여비는 사실 남장차림의 모용용을 여러번 마주 봤었지만 별로 감동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사비공주처럼 건강미가 최고였다. 따라서 모용용에게 호감을 가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중국 사람들은 바람불면 날아갈 것 같고 아미를 찌푸리면 애간장을 녹여내는 그런 병미인을 좋아하였다.
"이제 얼굴을 봤으니 내가 누구인지 알았을 것이오. 의자를 내주시오."
모용용은 눈을 내려깔면서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그녀의 아버지 모왕 모용수의 무공은 이 시대 모든 장수들의 우상이자 공포였다. 모용수가 연나라에서는 동진을 쳐부셨고 친나라에서 투항해서는 연나라를 쳐부셨다. 게다가 적빈은 오왕 모용수가 낙양에서 멀지않은 신흥성에 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그녀를 곱게 모셔두어야 했다. 혹시라도 적빈이 오왕 모용수와 맞서게 되는 입장에서는 아주 중요한 인질이 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적빈이 그녀에게 너는 인질이라고도 말할 수도 없었다.
"의자를 드려라."
적빈은 모용용에게 호의를 보였다. 그러나 적빈은 모용용에게 새로운 제안을 하였다.
"그런데 용공주, 내게 형의 아들인 적진이 있소. 그는 아직 미혼이며 인물도 보다시피 출중하오. 그와 용공주의 혼사를 오왕에게 주청하고 싶은데 용공주의 생각은 어떠시오?"
그것은 모용용 등을 여기로 잡아온 적진의 뜻이기도 했다.
"용공주만 허락한다면 용공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소."
적진이 호탕하게 말했다. 그러나 모용용은 아무 생각없이 적진을 비웃었다.
"시끄럽다. 나를 묶어놓고 결혼할 참이냐? 나를 당장 부왕에게 호송하고서 부왕의 허락을 받아라."
모용용의 목소리는 숨결이 희미하여 겨우겨우 끊어질 듯이 이어져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러나 그 말 내용은 다부진 것이었다. 적진은 잠시 움찔하였다. 이때 여비가 끼어들어서 말했다.
"모용용 공주는 이미 임자가 있소. 그러니 욕심 내지 마시오."
일개 병사는 아니고 장졸이기는 한데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여비의 입에서 엄청난 이야기가 나오니 모두가 여비를 주목하였다. 적진이 물었다.
"뭐라고? 그래 그 임자가 누구란 말이냐?"
하지만 모용수에게서 허혼을 받았던 여민이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다급하게 말했다.
"이놈 여비. 그래, 그 임자가 누군지 너는 안단 말이냐? 나는 아직 모르는데?"
그 뻔뻔스런 말에 이번에는 모용용과 여비가 놀랐다. 모용용이 장안성에서 떠나기 전에 여민의 입으로 자신이 오왕에게 사위로서 인증받았다고 자랑했었다. 그런데 바로 자신이 그녀의 정혼자를 모른다고 하다니, 모용용은 기가 찼다. 여비도 당사자인 여민이 부인하니 의외였다. 여비는 여민이 꼬리를 내려버리자 자기가 했던 말을 바꾸어야 했다.
"세상에 형만한 아우가 있냐? 용공주의 정혼자를 동생은 몰라도 형은 알지."
여비가 여민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모용용은 여민의 형인 여만을 떠올렸다. 여만이 그녀의 정혼자라고 말하는 것일까? 모용용은 궁금해서 여비에게 물었다.
"너는 웬놈이냐? 어떻게 내 정혼자를 알지?"
여비는 처음으로 모용용과 말을 나누게 되었다. 그 이전까지 모용빈이나 모용용 공주는 여비와 같은 존재에 대하여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나로 말하면 오왕한테 전하라고 부르지 않고 그냥 조왕이라 부르는 사람이다."
"뭣이? 부왕을 조왕이라고 불러?"
두 사람은 새로운 혈연에 대하여 저으기 놀랐다. 듣도보도 못한 저놈이 조카란 말이냐?
"맞아. 난 오왕의 의손자 모용여비거든."
"네가 오왕의 의손자라고? 그게 사실이냐?"
모용용과 모용빈 두 사람은 미심쩍어서 여민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여민이 부인하지 못하고 가만 있는 것으로 보아서 모용여비와 오왕의 사이는 확인되었다.
"암, 사실이고 말고. 두 공주를 오왕께 호송하는 것도 나의 책무다. 여만은 나의 보조로서 따라온 것이다."
여비가 혼자 제자랑을 해도 여민은 여전히 쓰다달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나서봐야 소용없고 일이 잘못되도 여비에게 책임지울 수 있으니 참는게 좋았다.
"이놈 누구 앞에서 말을 놓는 것이냐?" 모용빈이 준엄하게 여비를 다그쳤다. 모든 사람이 모용 공주 앞에서 말을 조심하는데 산적 출신인 여비가 그런 예의를 차릴 줄 몰랐다. 그런데 적진이 여비에게 다가와 캐물었다.
"그래, 그러니까 네가 오왕의 측근이구나. 모용여비, 너는 모용용의 정혼자가 누구인지 안단 말이냐?"
"알긴 아는데 금방 잊어먹었다. 그런 것은 용공주의 사생활이니까 너도 잊어버리도록 해라."
적진은 자신을 너라고 하는데서 깜짝 놀랐다. 하긴 모용용 공주에게도 막말을 하는 여비가 적진에게 공손한 말을 하지 않는게 당연하였다. 적진이 발끈하였다.
"너, 금방 나한테 너라고 했냐?"
"오왕의 손자가 네깟놈을 안중에 둘 줄 아느냐?"
여비는 금새 둘러쳤다. 그 말은 용공주의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용공주의 정혼자로 자처하고 나서도 좋을 여민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적진의 소굴에서 적진이 노리는 용공주의 정혼자라고 밝혔다가 적진에게 쥐도새도 모르게 죽을 것이 겁났기 때문에 용공주의 정혼자라고 떳떳하게 밝힐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단지 살아나가는 것이 여민의 목적이었다. 여민은 살기 위해 제 것으로 다짐받았던 모용용을 팔았다.
"그럼 제가 오왕을 찾아가서 적공자와 용공주의 결혼을 청해보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적진이 흡족해 하였다.
"그래, 좋다. 여민 너를 당장 풀어주겠다. 그러니 오왕에게 가서 빨리 허혼을 받아와라."
여민이 드디어 목숨을 구원받아서 그 길로 하남군을 빠져나가고 모용빈과 모용용, 여비 세 사람은 나머지 병사들과 함께 인질로 남아서 하남군의 용문 관아 객사에 머물게 되었다. 모용용은 여민이 빨리 소식을 전해서 부왕 모용수가 그녀를 구해내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여민 이놈의 얼굴만은 다시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오왕 모용수는 12월 하순에 업성에 이르러 하남군의 적빈이 먼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들었다. 업성의 대도독 친나라 황태자 부비에게도 하남의 반란 소식이 전해졌다. 부비는 노회한 장수인 부비룡에게 기병 일천을 주고 아직도 친나라 신하라고 생각한 오왕 모용수에게 보병 이천을 주어서 낙양으로 달려가 용문의 적빈을 치도록 하였다. 모용수는 다시 낙양으로 출전하기 앞서서 부비에게 업성 안으로 입성하여 전연국의 종묘사직에 배알할 수 있도록 주청하였다. 그러나 부비는 거절하였다. 부비는 오왕 모용수를 깔보고 있었다. 오왕 모용수는 할수없이 미복을 갈아입고 몰래 성중을 들어가 연나라 종묘로 향하였으나 그곳 향리가 모용수를 알아보고 길을 막았다. 오왕 모용수는 향리를 살해하고 정자를 불태운 후에 업성을 벗어나왔다.
부비는 그 소식을 듣고 모용수가 고작 오천도 안되는 군사로 성밖에 있으므로 쫓아나가서 모용수를 죽이려고 생각하다가 일전에 비수에서 부견을 구원한 공로가 있으므로 낙양으로 가게 놔두었다. 부비는 모용수를 죽일 최후의 기회를 놓친 것이었다. 부견이나 부비는 의리 때문에 대세를 그르쳤다고 친나라 신하들이 한탄하였다.
모용수는 12월말 낙양으로 구원을 가는 도중에 부비의 심복인 부비룡을 죽이고 그의 저족(친나라 민족) 일천군사를 모두 땅구덩이에 묻어 죽였다. 그리고 마침내 모용수는 연나라를 다시 부활한다는 격문을 뿌려서 선비족과 대족, 정령족들을 규합하니 어느새 삼만 병사가 모였다. 정령족에게 사로잡혔던 여민이 낙양에서 탈출하여 황하를 건너서 모용수를 만난 것은 이때였다. 오왕 모용수는 모용빈과 모용용 등을 구하러 삼만 병사로서 황하를 건너 낙양 동쪽 30리에 있는 백마사에 이르게 되었다.
모용수의 선봉장군이 황하를 건너가자 하남의 적빈이 모용수와 싸우는 것을 포기하고 사자를 보내어 모용수에게 투항하였다. 정령군을 이끌고 적빈이 투항해온 시점에는 모용수의 군대는 정령군과 합쳐서 십만에 가까울 정도로 불어나게 되었다. 새로 연나라의 기세가 일어났다. 그것도 장안의 코앞인 낙양에서. 정령족장 적빈은 모용수가 백마사(낙양 동쪽 삼십리)에 도착하자 모용수에게 달려와 아부하고 대연황제를 칭하도록 권하였다. 그러나 모용수는 아직 전연의 마지막 폐황제 모용위(모용수의 조카)가 비록 친나라 부견의 포로일 망정 장안성에 살아있으므로 황제위를 사양하였고 단지 연왕이라 부르게 하였다. 적빈은 모용수가 황제에 즉위하지 않는 것이 자신이 승상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라 못내 아쉬워하였다. 한편 적빈은 용문에 남아 있는 적진에게 사자를 보내어 모용용 등을 데려오라고 일렀다. 적빈의 통고를 받은 적진은 군사들을 이끌고 용문의 하남 태수관아 모용용의 객사에 다시 나타났다.
"용공주. 드디어 오왕을 만날 수 있게 되었소. 오왕이 황하를 건너 내려와 낙양 백마사에 계시다고 하니 여기서 오십 리에 지나지 않소. 곧 만나볼 수 있을 것이오."
"그러냐? 그럼 어서 가자."
"하지만 잠시 만나보고서 다시 하직인사를 올리실 것이오. 곧 꽃가마타고 내게 오시게 될 것이오."
적진은 여민이 모용수에게 달려가서 그들의 결혼 이야기를 꺼내고 중신설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모용용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동안 무례했던 것은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차후로 내게 더 이상 무례한 말을 하면 용서하지 않겠다."
"용공주. 본장이 언제 무례했소?"
"내 정혼자를 아직도 업수이 여기고 있으니 나를 무시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
용공주의 말은 더 이상 결혼 이야기를 꺼내면 그것이 곧 무례라는 것이었다. 적진은 모용용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네가 딴 놈을 마음에 두고 있구나. 그러나 적진은 모용용을 포기할 수 없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를 얻는 것은 천하를 얻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모용용의 남편이자 모용수의 사위가 되어 천하를 주름잡을 수 있다는 꿈은 깨져버렸다. 하지만 모용용을 인질로 잡고 나아가 아내로 삼고, 그리고 나서 천하를 도모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되었다.
적진은 모용용의 쌀쌀한 태도로 인하여 생각을 고쳐 먹었다. 적빈은 그날로 숙부에게 충성했던 정령족의 장수들을 태수관아에 모아서 일장연설을 하였다. 정령족이 언제까지 저족 친나라, 선비족 연나라의 신하 노릇만 돌아가면서 할 것인가 따졌다. 선비족도 중원의 황제를 하였고 저족(부견)도 하였는데 이제 정령족의 차례가 될 것이라고 설파했다. 적진은 정령족의 병사들에게 자신은 선비족 모용수를 위해 투항하
지 않고 오로지 정령인들을 위한 터전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하고 궐기하였다.
적진은 마침내 숙부 적빈의 장수와 군사들을 포섭하여 정령족의 삼만 군사를 데리고 동쪽 숭산으로 향했다. 동북쪽의 백마사로 가지 않고 동쪽 숭산을 지나 영양성(고대 황하가 북쪽으로 꺾어지던 곳)에 이르러 부비에게 사자를 보내어 투항하는 척 하였다. 부비에게 적진은 반란수괴였으니 실제로 투항하면 목이 떨어질 것인데, 투항 의사만 보여서 단지 서로 싸우지말고 공동의 적인 선비족 모용수를 상대하자는 의사표시였다. 큰 적의 작은 적은 서로 동지라는 논리였다.
연왕 모용수는 적진이 자기 딸을 인질로 삼아 끌고 도망가자 화가 났지만 숙부인 적빈을 어쩔 수는 없었다. 게다가 쉽게 공략될 것으로 보였던 낙양성은 부견의 아들 부휘가 굳게 문을 닫고 지켜서 쉽게 함락되지 않았다. 모용수는 배아프지만 부휘의 충절을 칭찬하고 돌아서야 했다. 모용수는 일단 선비족 대연국의 수도였던 업성을 먼저 쳐서 되찾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황하를 따라 동쪽으로 내려와 영양성에서 황하를 건너 업성으로 쳐들어갔는데 384년 2월이었다.
그러나 업성은 위나라 조조가 짓고 연나라 모용준 황제가 도성으로 수축해놓은 성이라서 쉽게 공략되지 않았다. 부비는 수비를 위주로 하고 경거망동하지 않아서 모용수를 애타게 하였다. 연왕 모용수는 업성의 아래에 신흥성을 짓고 장기전에 돌입하였다. 모용수는 자칭 대장군대도독연왕이라 칭하고 정령족장 적빈을 건의대장군에, 적빈의 동생 적단을 주구대장군에 봉하고 자신의 동생 모용덕을 거기대장군범양왕, 조카 모용해를 정서대장군태원왕, 아들 모용보를 왕세자에 봉했다.
그리고 백제인 여울은 좌사마겸 영양군태수로서 작호는 부여왕에 봉하였다. 남조에서는 백제라고 불렀지만 북조에서는 아직도 백제를 부여라고 불렀다. 그런데 업성을 치기 위해 신흥성을 짓는 동안에 적빈이 스스로 상서령(승상)에 봉해 달라고 청했다. 연왕 모용수는 아직 자신이 연황제에 오르지 않았는데 적빈이 승상을 청하니 웃어넘겼다. 그랬더니 적빈은 밀통하여 업성의 부비에게 사자를 보내어 모용수를 배신하겠다는 뜻을 전하다가 일이 발각되었다. 모용수는 즉시 적빈과 그 형제들을 잡아 목을 쳐버렸다. 적진도 그 자리에서 같이 죽을 뻔한 것을 모용용에 대한 흉심 때문에 목숨을 구원받았다.
적진은 정령족 삼만 병사와 계속 동진하여서 영양성에서 황하(고대의 황하 하류)와 결별하고 그 대신에 연수강(현재의 황하 하류)을 따라 연주(沇州; 연주자사 張崇)의 도읍 견성(堅城)을 지나 남연주 동평군까지 이르렀는데 이곳은 친나라 부견의 남연주자사 모성(毛盛)이 다스리는 곳이었다. 적진은 남연주성을 공격하기 위해 동남으로 길을 틀기로 하였다. 남연주자사 모성은 정령족 적진이 동평군에 들어오자 자신에게도 이만 군대가 있었지만 청주자사 부랑에게 응원군을 청했다.
청주자사 제왕 부랑은 친황제 부견의 종형의 아들이었다. 본래 그는 시서에 능하고 무관 출신은 아니었다. 그래서 장남인 청주부장 부락과 사위가 된 청주사마 여만에게 청주병사 이만을 주어서 남연주군과 협격하여 동평군의 정령족을 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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