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강책(제7부)

제 070 회 부국강병책을 드러낼수 없다

금박(金舶) 2017. 11. 1. 14:37


"제가 작년 봄에 명나라에서 돌아왔고요. 그 때 전하를 한번 뵈옵고, 8 월에 또 한번 찾으셔서 뵈옵게 되었습니다만... 작년 8 월 15 일 전후였습니다. 전하께서 명나라와 요동의 상황을 이것 저것 물으시더니, 저에게 말씀하시더군요. 우리 조선 국에도 원구단(圓丘壇)을 설치하여야 될 터인데, 저에게 어찌 생각하느냐는 것을 물으셨습니다."


"맞아요. 제게도 원구단에 대해 물으셨었지요. 제가 당시나 지금이나 예판(禮判 예조판서)인지라 이건 저의 소관이지요."


"아! 관송 대감께도 물으셨군요. 주상께서 원구단 즉 하늘에 제사지내는 제단에 대해 물으신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바로 천자국을 생각하신다는 말이지 않겠습니까?"


"전하께서 위에 오르신 후에 한 동안 자주 말씀하신 것이 우리 조선국도 왜국에도 쳐들어가 복수해야 하지 않겠냐 그런 말씀을 하셨지요. 실제로 임진강 하류에 있는 파주 땅에 요새 성곽을 새로 만드시겠다는 뜻을 말하셨다가 계축년 (1613 년) 1 월에서야 그 뜻을 거두셨습니다. 너무 국력 손실이 크다는 것을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다시 원구단 말씀을 하셨을까요?"


[이씨 조선조에서는 세조, 광해군, 고종 대에 원구단을 세 번 세우려 하였읍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천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며, 조선을 천자국으로 하겠다는 뜻인 것입니다. 세조와 고종은 실제로 원구단을 세웠고요. 세조는 세웠다가 삼 년만에 허물어버립니다. 고종은 1897 년 원구단을 짓고, 11 년간 대한제국의 황제로 재위하였습니다.]


"그것이... 요동에 여진족 들이 나라를 세우고 이젠 황제를 칭한다고 합니다. 우리 조선국의 이 할도 될까말까한 일백만 명의 작은 부족이 그렇게 나서는데, 육백만 명의 조선국은 왜 못할까 하는 생각을, 전하께서는 그런 생각을 하셨는가 생각되네요."


"교산은 그래 뭐라 대답하셨습니까?"


"누르하치가 신하들을 잘 다스려서 일치단결하게 되었으니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지요. 전하께서는 더 이상 아무 말씀 없으셨고요, 저는 그 대답을 하고 나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집에 와서 곰곰 생각하니 오십 나이 먹으면서 이제 무엇인가 나라를 위해 할 일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에게도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요."


"교산, 내가 교산에게 꼭 당부할 말이 있는데 들어주셔야 하겠습니다. 이제 전하께서 원구단 말씀하신 내용은 어느 누구에게도 말을 꺼내지 마십시오. 그 말은 우리 조선이 명국을 배신하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결코 입 밖으로 꺼내서는 안됩니다."


"예, 잘 알겠습니다. 관송 대감."


"그리고 앞으로는 인목왕후라는 말을 쓰지 마시고 소성대비(昭聖大妃)라는 말을 쓰십시오. 그게 맞습니다. 전하께서는 즉위하신 후 한동안 부국강병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으며, 교하에 요새를 만들고 천도를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만, 계축년 이후로는 좀 수그러지셨습니다. 그런데 교산을 불러 그런 말씀을 하셨다니 뜻밖이군요. 흐음, 아마도 요동의 여진족들이 대금국을 세웠다는 말을 들으시고 다시 순간적으로 웅심이 꿈틀하셨나봅니다. 그러나 쉽지는 않은 일이라 다시 잠잠해지실 걸로 봅니다."


"예, 그렇군요. 그러니까 전하께서는 처음에는 부국강병을 추진하시려다가 이제는 잠잠해지신 거로군요."


"전하께서 즉위하신 후로 년년(年年) 풍년이 들었지요. 게다가 대동법(大同法 = 공납품 대신 미곡으로 일괄 납부케함, 1 결 당 16 말 斗을 거두었음)을 실시하자 백성들의 생활에서는 바로 기름기가 돌았으며, 양반들과 지주들은 전하를 못잡아먹어서 죽을판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수가 늘어나고 국고가 바닥을 면하자 왜란 때에 불탄 궁궐을 하나씩 건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동법은, 공물을 대신 납부해주는 걸로 치부를 해왔던 관료와 상인들이 그 방도를 잃게 만들었으니 그들이 얼마나 반발을 했을지 알만 합니다. 게다가 토지를 갖은 결수에 따라 일괄 과세를 하니 양반들과 지주들이 반발하는 것도 당연할 것입니다."


"이렇게 나라꼴이 착착 갖추어져가는 것을 본 잔당들은 전하의 치세가 오래갈 것을 염려하였던지, 새로운 음모로 꾸민 것이 호패법(號牌法)입니다. 호패법이란 백성들 호구조사를 정확하게 하여 군역(軍役)을 제대로 하자는 취지라 하면서 실시를 주장 하였습니다. 말은 아주 좋은 말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나라를 망치자고 하는 수작이었습니다. 호패법은 바로 인두세(人頭稅)인데 사실 이게 제대로 되자면 사전 조건이 맞아야 하는 것인데, 무작정 호패법을 하자니... 교산은 혹시 알고 있나요? 호패법을 하려면 어떤 조건이 맞아야 하는지? 이건 호패를 갖는 것이 없는 것보다 백성들에게 더 유리해야 하는 것이에요. 이렇게 조건이 되면 지주들이 갖은 대장원에 숨어든 백성들이 호패를 갖겠다고 장원에서 벗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전에는 실패할수 밖에 없지요."

   

"그렇습니다. 가장 우선해야할 것은 양반과 지주들이 새로운 노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며, 그 다음으로는 자기들이 데리고 있는 노비들을 모두 해방을 시킨 다음에 호패법을 실시하든지 해야지, 그것을 하지 않고서 호패법만 실시하자면 그게 뭐가 되겠습니까?"


"그렇지요. 그래서 우리 대북파가 나서서 결사적으로 막아내는 데에 성공하였지요... 교산, 혹시 좀 이상하다 생각한 적은 없나요? 이런 정치투쟁은 겉모양에 나타난 속임수이며, 실제로는 조총부대를 양성하자는 것임을 교산도 알고 계시지요?"


"저도 뭔가 미심적게 생각한 적이 있으나 뭐가 뭔지는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 없으니 알수가 없었지요. 과거(科擧) 때마다 시키는 대로 했지만 거기에서 벼슬 판 은자를 가져가 궁궐짓는 데에 부족한 은자를 더하자는 것인줄 알았지요. 하지만 뭔가 이상하기는 했어요."


"교산도 눈치가 빠른 사람이니 뭔가 알수 있었겠지요. 궁궐짓는다 하여 거기에서 은자를 빼내고, 과거 때마다 그렇게 마련한 은자 몇 천 량씩, 또 명국에 가는 사절단에게 여비로 은자를 더 주었다가 다시 빼내서 마련한 은자 몇 천 량씩, 주상(主上)께서는 조총부대를 준비한다는 것을 비밀로 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군병을 키우고 있음이 명국에나 여진에 알려지면 어떤 결과가 오겠습니까? 이러니 신하들에게도 일절 비밀로 해야만 하는 거지요."


"역시 저의 짐작이 아주 틀리지 않았군요."


"주상께선 위(位)에 오르신 후 바로 강병 육성을 생각하셨습니다. 다행히 년년 풍작이 되었고, 이렇게 나라살림이 좀 펴지자 전하는 바로 무기 생산을 독려하고, 명나라에서 염초(焰硝)와 유황(硫黃)을 많이 들여오도록 하였습니다. 이 때부터 우리 조선에 조총부대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였지요. 전하께서는 임진란 때에 총알이 날아가는 전장에서 직접 실상을 보셨으니 총포부터 준비시킨 것은 당연한 처사였습니다. 다음에는 교하에 도읍을 옮기는 일도 지시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한 삼 년 간은 그것을 위해 여러가지 준비를 하였고 교하 쪽에 만들 성채의 설계도를 그리기 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천도(遷都)는 없던 일로 하셨지요."


"그 즈음에, 그러니까 임자년(壬子年 1612 년, 광해군 4 년) 9 월에 래암(來菴 정인홍 鄭仁弘의 호) 대감께서 노량진(鷺梁津)에 오셨을 때에 제가 여쭈어본 적이 있습니다."


[정인홍 鄭仁弘 1535 - 1623, 선조, 광해군 때의 문신, 임진왜란에서 늙은 몸으로 의병을 일으키고, 대장을 수행함. 광해군 때에 강경 대북파의 실질적 영수로써 한양에 이산해, 이이첨을 앉혀두고 원격 정치를 함. 정인홍은 사람을 대하여 논의를 할 때 칼로 끊은 듯이 하고, 남의 의롭지 못한 행실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비록 고관대작이라 하더라도 마치 노예처럼 비루하게 여기고 원수처럼 미워했다. 비록 평소 알고 지내던 명유(名儒), 석사(碩士)로 불리는 자라도 조금만 아부하고 구차스레 화합하려는 태도가 있으면 절대로 함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모두 그를 꺼렸지만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정인홍은 광해군으로부터 여러 차례 벼슬길을 강요받았으나 고사(固辭)하였다. 마지막에 서기 1612 년 우의정을 하라는 강권에 못이겨 올라왔으며, 노량진에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이후 9 월 28 일 광해왕을 만난 후 1 개월 여 머물다 다시 고향으로 내려갔다.]


"뭣을 물어보셨는지요?"


"부국강병에 대한 무슨 말을 하다가 갑자기 제가 래암 대감께 물었습니다. '조선이라고 중원의 주인이 되지말란 법이 있습니까?'... 하고 말했지요."


"헉..."


"그 자리에는 우리 대북파의 여러 사람들이 함께 있었는데, 모두 그 말을 듣고서 할 말을 잃은 채 잠시 눈에 촛점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모두들 한동안 충격에 빠져있는데, 래암께서 답을 하셨습니다. '우리라고 되지말란 법이 있겠는가?', 그래서 제가 다시 말했지요.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라고 언제까지나 명나라의 눈치나 보고 비굴하게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꼭 갖추어야 될 조건을 말씀해 주십시오.' 라고 말했지요."


"래암께서 무어라 하셨는지요?"


"래암께서 하신 말씀은 첫째 훌륭한 군주가 있어야 한다는 것, 둘째 훌륭한 신하가 있어야 한다는 것, 셋째 바다를 장악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바다를 장악해야 한단 말씀은 특별하군요? 무슨 뜻이 있나요?"


"그것은 임진, 정유, 왜란에서 이순신 장군이 보여주었지 않습니까?"


"흐음, 래암께서는 또 다른 말씀은 없었는지요?"


"당시에 현안이 너무 산적해 있는지라 더 이상 논의는 없었지만 모두 가슴 한 쪽을 붉은 폭풍으로 물들였지요. 그 후로 별 말은 없었지만, 주상께 직주(直奏)를 하시는 래암께서는 아마 전하께도 그 말씀을 드렸을 줄 생각합니다. 그러니 전하께서는 지금도 마음 한 쪽에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실 것은 틀림없지요. 다들 알고 있는 일인데, 전하께서 왕세자로써 명나라의 책봉인준을 얻지 못하여 얼마나 고통을 받으셨는지 대감도 잘 아시지않습니까?"


"교산, 지금은 어찌 생각하십니까? 지금도 우리 조선국이 중원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것을 묻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는 지금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만성 수가 1 억이 넘는 대국을 밀어내고 이기는 것은 불가능이라고요. 모르겠어요? 일시적으로 점령하여 약탈을 하고 철수하는 것은 가능하겠지요. 그도 금방 복수를 당하겠지만요. 고작 육 칠백만의 백성을 갖고 있는 조선으로서는 중원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것은 불가능이지요."


"관송 대감께서는 전하와 독대도 자주 하시니 전하의 마음을 아실텐데요? 전하께선 지금도 중원을 도모하자 생각하시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냥 한번 말만 해보신 것일까요? 저는 혼란스럽습니다."


"저의 짐작으로는... 어디까지나 저의 짐작일 뿐입니다. 중원을 차지할 방도만 있다면 전하께서는 한번 시도를 해보시려고 할 것입니다."


"그럼 관송대감께서는 어떻습니까? 제가 하나의 방법을 말씀드릴테니, 독대를 하실 때가 오면 그것을 전하께 한번 말씀드려주실 수 있겠는지요?"


"그야... 말씀드리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마는... 도대체 어떤 방도를..."


"저는 명나라와 요동을 조선 신하들 중에서는 가장 많이 다녀왔습니다. 명나라는 지금 심한 몸살 병을 앓고 있는거나 같습니다. 이대로 그냥 두면 병증이 점점 더 깊어지고 마지막에는... 요동 땅을 지나오면서 여진족들의 말도 듣게 됩니다만... 여진은 금나라를 세웠고, 이제부터 요동 땅이 가로막혀 우리가 명나라에 가려면, 조만간 바닷길로 가야만 하게 될 것이지요."


"대금이라고 나라를 세우고 길을 가로막는다니, 이제 우리 사절단이 명나라를 다녀오는 데에 큰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교산께서는 명나라에 다녀오시면 다른 사람들은 명나라의 귀물(貴物)을 두루 사오는데, 서책만 수 천 권씩 사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당시 명나라에 가는 사신들은 사무역을 할 권리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는데, 정사(正使)의 경우 그 한도가 은자 3천 량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귀물을 사와서 장사를 하지만, 저는 나라에 가장 보탬이 되는 책을 사와서 장사를 하는 것일 뿐 다른 뜻은 없습니다. 저는 북경에 가면 시간날 때마다 서책 상가에서 살다시피 합니다. 그것밖에 다른 취미가 없으니까요. 서책상점에서는 저를 보면 큰 손님이라고 특별대우를 해줍니다. 저를 위해 책고르는 서동(書童)을 하나 붙여주지요. 그저 여러 종류의 책을 되는대로 사가지고 옵니다. 그 서책 덕분에 관직을 받지못했어도 당분간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이 되고 있습니다... 그건 그것이고요. 제가 중원을 차지할 방도를 말씀드리기 전에 한가지 묻겠습니다. 관송 대감님은 대금의 여진족이 조선으로 밀고 내려오면 감당해낼 수 있으리라 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