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원성 일행 여섯 명은 10 월 7 일에 광동성 남단에서 배를 타고 해남도(海南島)에 도착하였다. 해남도는 가운데에 오지산(五指山)이 우뚝 솟아 있고, 주변으로는 중심로 갈수록 원시림(原始林)이 가득한 오지(奧地)였다. 해변에 가까운 곳은 중원 사람들이 이민(移民) 들어와서 촌락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중심지인 열대 우림(熱帶 雨林) 지역에는 미개한 원주민(原住民)이 살고 있다고 하였다. 진원성은 두 부인이 가보고자 하는 열대 우림으로 가득찬 곳에 들어가기로 하였다. 우선 이곳에 살고있는 사람을 안내인으로 고용하였으며, 원시림 안으로 들어갔는데, 어른 4 명이 팔을 뻗어 잡고서야 두를수 있는 네 아름 거목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으며, 위로는 한 뼘 정도 되는 파란 하늘 조각들이 가끔씩 보이고 있었다. 나무의 높이는 20 장(= 60 미터) 이상은 될 걸로 짐작되었으며, 거목들 사이로는 이름모를 풀나무들이 썩어가는 나뭇잎 사이로 활개치듯 돋아나 있었다. 때로는 거목들이 쓰러져서 바위처럼 길을 가로막거나, 또는 원숭이들과, 각종 도마뱀들과 이름모를 수많은 동물들이 숨어있다가 사람의 발길에 놀래서 도망치기도 하였다.
항주와 남해 부인들은 이제 의원공부에서 배운 약초들을 찾는 일에도 관심이 멀어졌으며, 그저 대자연의 풍성함에 한껏 젖어들었다. 중원이라면 한참 추워질 때인데 이곳은 습기차고 무더웠으며, 두 부인들도 연심 땀을 훔치면서도 이 새로운 땅에서 보는 야생의 세계에 몰입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진원성 역시 지금 까지 어느 곳에서도 이런 광경은 본 적이 없으므로 신기한 이계(異系)의 풍물에 감탄하였다. 이렇게 아침에 출발하여 각기 다른 통로로 원시림 속에서 도시락을 까먹고 돌아오기를 사흘동안 세 번 하였다.
두 부인들은 이미 뱃 속에 아이를 갖고 있었으므로 진원성은 오지산에 오르고 싶었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되었다. 두 부인들을 데리고 가는 것도 무리가 될까 걱정이었고, 혼자서 갔다오기도 쉽지 않았다. 두 부인은 매일 눈을 뜨면 서로 맥을 재어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였다. 그동안 항주부인과 남해부인은 자기의 몸 속에서 자라는 아이에게도 경이감을 느끼고 있었으며, 또 눈앞에 펼쳐진 이계의 모습에도 경이와 알지못할 숭고함을 느꼈던 것이다. 건기가 시작된 아열대지방의 가을은 마치 지내기가 적당하였고, 사계절 모두 푸르름을 보는 것과 함께 자기 몸 속에서 커가는 생명을 느끼면서 두 부인은 비로소 그 동안 입은 영혼의 상처를 치유받을 수 있었다.
두 부인은 자기가 어렸을 적에 납치가 된 것인지, 준갈이족이 노예상인에게서 은자를 주고 사들인 것인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저 음교녀로 키워져서 소모될 그 날까지 허용된 생명일 뿐이었다. 그러나 운명이 바뀌고 이제서야 하나의 독립된 영혼으로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여행하면서 보게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 속에서 자기의 삶을 비추어보며 어떤 객관적 기준을 갖음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자기의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지만 고아라는 의미가 삶이라는 전체 배경 속에서 무엇인지를 이제 확실하게 알 수 있었으며, 흑응회의 총관으로써의, 대형 진원성의 부인으로써의 자리가 무슨 의미인지 알고서 받아들이는 과정이 되었던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두 부인은 자기 스스로의 가치를 알게 되었고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었으며, 그곳에서 출발하여 진원성과 흑응회와 흑응회의 모든 것들을 사랑할 수 있게 변화된 것이었다. 객점에 들리면 방을 세 개를 잡아서 진원성은 두 부인과 한방에 들게 되었는데, 두 총관들은 그동안 어쩔 수 없이 서로 형제와 같이 지냈지만, 이제는 진원성과의 한 가족이 되어 함께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진원성을 대하면서 부인으로써 어떤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아이의 어머니로써 감당할 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마음도 갖추게 되었다.
한편 진원성은 해남도에 들어서면서 자기의 육체에 찾아온 변화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맨 처음에 오른발 엄지발가락에 나타났다. 엄지발가락 앞 쪽에 어떤 부담감을 느꼈으며, 그것이 어쩌면 발끝을 어디에 무심코 부딪혀서 그것 때문인가 하고 생각하였다. 망치로, 적당한 세기로 엄지발가락을 맞은듯 그런 느낌이, 삼 사일 쯤 지나면 없어지려니 하였다가, 삼 사일 후에도 계속되고 있음으로 다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오른손 집게 손가락 끝에서 다시 그런 느낌이 시작되었다. 망치로 손가락을 적당히 얻어맞은듯, 만져보면 뭔가 느낌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며칠 후 다시 왼쪽손 네째 손가락에서 그런 증상이 나타났으며, 또 며칠 후 왼쪽발 엄지발가락에서 그런 증상이 나타났다. 10 월 중순 북으로 올라가는 중인데 마지막으로 심장이 있는 부분에 어떤 압박감을 느끼게 되었으며, 진원성은 스스로의 내부를 잘 관찰하고 연구하여 마침내 그것이 기체가 육체와 분리 될 때에 그 작업이 잘되도록 어떤 준비과정을 미리 거치는 것임을 알아내었다. 사지(四指)와 심중(心中)에서 일어나는 분리 준비 작용이라는 것을 알아낼수 있었다.
[그림 기체성장분리]
이런 과정을 겪는 데에는 사부 즉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 없으므로 답답하였고, 오직 인내와 끈기로 스스로 알아내어야 하였다. 물론 무조건 잘 될 것이라 믿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었다. 진원성은 이제 기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좀더 진전이 있었으며, 선계로 가야할 날이 더욱 임박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체를 들여다보니 토번의 어디에서 본 그림이 더욱 세밀한 모양세를 나타내면서 균형을 이루어 만들어져 있었다. 이 그림이 기체가 만들어지는 진도(進度)를 나타내주는 것임을 이제 확실하게 알수 있었다. 그러나 이 그림의 완성은 어디까지일까 하는 것을 알지는 못했으며, 이제 진원성은 북쪽으로 오르는 길을 재촉하게 되었다. 가능하면 빨리 제남에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하루 두 시진 이동하던 것을 하루 세 시진으로 늘려서 길을 재촉하였다. 한 시진의 이동 거리는 특별하게 지체될 일이 없으면 삼십 리 정도가 되며, 세 시진 길을 가면 일백 리(약 40 킬로) 길을 갈 수 있었다.
도중에 객점에서 하룻밤 지내는 때에 남해부인이 진원성에게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대형님, 제가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남해부인이 뭘 알고싶을까? 한번 들어봅시다."
"다른 형님들은 대형님과 여행을 가면 보통 두 세 달 전후 걸려 다녀오셨는데, 우리는 벌써 다섯 달째 입니다. 돌아가면 형님들한테 구박받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그건 항주와 남해 두 부인이 의원 공부를 하느라, 나와 여행한 적이 없으니 한번에 부족했던 것을 다 채우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오. 혹 여행이 너무 길어지니 지루해진 것이오?"
"지루해진 것은 아니지만, 제남에 계신 형님들과 학숙 사부님들 생각이 납니다. 의원공부가 늦어지는 것도 걱정이 되고요."
"의원 공부는 돌아가면 열심히 해서 부족한 것을 만회하시오. 혹 의원 공부가 너무 힘겨웁지는 않소? 항주부인은 어떻소?"
"저나 남해는 의원공부가 힘겨워서 그런 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원 공부 중에 매일 미시에 한 시진 씩, 회원들의 부인(妻)을 진맥하고 병증을 상담해오고 있었는데, 우리 둘이서 오래 빠지니, 회원의 부인들이 병을 돌보지 못하게 되어 그게 마음에 걸려서 이죠."
"아, 벌써 병자를 돌보기 시작했군요."
"아직은 견습 의원이니 우리가 한번 보고, 그 결과를 학숙의 사부님께 보고하여 검토를 받습니다. 아직 한참 멀었지요. 그래도 우리가 병을 돌봐서 회복되는 부인들이 생기고 해서, 이제 우리들은 회주부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지요."
"그래서 자리를 오래 비우는 것이 마음에 걸렸구려."
"예, 하지만 이 여행에서 대형님과 보낸 시간이 아주 값진 것도 잘 압니다. 남방의 풍족한 풍물을 직접 보고 기억해 두었으니 아마 죽을 때 까지 잊지못할 추억이 될 것이지요. 저와 남해가 대형님께 한번쯤 감사하단 말을 했어야 하는데 그말을 지금 합니다. 대형님 은혜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대형님, 저도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그리고 또 뭔가요? 남해부인은 쉬이 말해봐요?"
"그리고 이렇게 우리에게 잘 대해 주시는 것이 혹시?"
"......"
"저는 여행 처음에 제남에서 출발할 때에는 어쩌면 이것이 대형님과 하는 여행으로 처음이자 마지막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지금은 그렇더라도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엔 대형님과 마지막 여행이 되면 얼마나 슬플까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된다해도 기쁘게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요..."
"남해 아우는 웬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할까? 대형님, 남해 아우가 실수를 했지요?"
"아니에요. 남해 부인이 나이는 어려도 철이 들게되어 깨닫게 된 것이오. 사람은 서로가 독립인 것이오. 그리고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이오. 남해부인이 나를 의지하고 애모하는 마음만으로 지내다가, 이젠 독립적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오. 그리고 만남이 있었듯이 언제고 헤어짐이 있을 것임을 깨닫은 것이오. 세상살이는 있는 동안 서로 잘 대해주는 것이 최선이고 그 이상은 없다오."
"항주 형님은 어떠했을지 몰라도 저는 대형님이 언제고 곧 떠나실 것처럼 느꼈지요. 저의 느낌이 틀리기를 바라지만 저는 왠지 제 느낌이 맞을 것 같았고요. 대형님을 볼 때마다 그 생각이 나곤 했지요. 하지만 전 이번 여행을 함께 지내면서 어느 새 대형님이 떠나신다 해도 여전히 저의 기억 속에서 함께 할수 있다고 믿게 되었어요. 그래서 대형님이 떠나신다 해도 슬프지 않고, 아니 슬프더라도 참고 이길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말을 대형님께 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전번 긴 여행을 다녀왔어요. 나를 기다리던 해녕총관 등은 6 년 간 기다리기가 아주 힘들었을 거에요. 그 여행 중에 나는 남해, 항주, 북경, 소주, 하미 총관을 만나 인연을 맺게 되었지요. 그 여행이 없었다면 지금도 다섯 총관들과는 얼굴도 모르는 체로 살고 있겠지요. 여행을 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피할수 없는 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오. 두 총관은 기억해 둬요. 나는 여행을 해야한다면 피하지 않을 거요. 가야한다면 가야지 포기하거나, 나 대신 다른 사람을 보내지 않을 것이오. 또 어쩌면 6 년이 아니라 10 년이나 20 년쯤 이거나 더 길어진다고 해도 그건 어쩔수 없다 생각해요. 또 여행가서 끝내 돌아오지 못할수도 있지 않겠소? 그렇게 모든 일이 가능한 것이오. 다시 여행을 떠난다면 이번에는 내 맘이 더 편할 것이오. 이미 아이들이 여러 명이 자라고 있으니 부인들이 애들 뒷바라지 하면서 커나가는 걸 보느라 날 기다리기가 훨씬 쉬울테니, 그렇지 않겠소?"
"예, 대형님이 여행을 가셨다가 돌아오시는 일은 항상 있을수 있지요.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요."
"나는 두 부인이 지금까지 잘 지내왔지만, 어떤 걱정할 일이 생겨서 마음이 불안할 때를 대비해서 평소에 마음을 굳게하는 연습을 해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북경, 항주, 남해 부인이 우룸치에서 몸이 아파도 마음을 굳게하여 중원 말을 배우려고 노력하였던 바로 그때 처럼, 마음을 단단히 하면 걱정거리 일도 다 이겨낼수 있을 것이오.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면... 다 이룰수 있소."
진원성은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면 두 부인들도 마음으로 독수리를 만들어 날릴수 있을 것이오' 라고 말할뻔 했다가 잠시 쉬면서 '다 이룰수 있소' 라고 말을 바꿨다. 두 부인이 이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나는 알수 없었지만, 표정으로는 납득했다고 보여주었다. 남해부인은 가장 어렸기 때문에 마음으로 진원성을 더욱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녀만은 남달리 진원성이 머잖아 떠날것 같은 직감을 갖게 되었나 보다. 진원성은 항주 남해 두 부인에게 백일승천 같은 이야기는 말하지 않고서 알맞게 이야기를 해 두었다. 대화를 통해서 확인한 것은 남해 부인이 어리지만 의원공부를 하면서 상당한 훈련을 쌓아서 마음이 단단해졌다는 것이다. 의원공부는 해야할 공부량이 상당히 많았으므로 자연 마음이 굳지 않으면 해내기 어렵고, 그에 따라 남해부인은 스스로 이겨내고자 마음을 굳게 만들려고 많은 노력을 해왔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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