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사인묘(제6부)

제 071 회 산동, 동3부(東三府) 회표(會票) 문제

금박(金舶) 2017. 3. 30. 11:55


6 월 9 일 저녁에 진원성과 하미총관은 흑응장원에 도착하였으며 진원성은 뜻밖으로 왕준서와 월이, 설이 두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왕준서에게서는 황성에서 발생한 사건과 왕준서가 두 여인을 데리고 경성을 빠져나와 제남에 이르게 된 이유도 듣게 되었다. 태자당에서는 어떤 불길한 사건이나 사람도 황태자와 연결되지 않기를 바랬기 때문에 춘하추동 네 여인 역시 재빨리 치워야 했던 것이다. 진원성은 왕준서에게 과거 산동성에 세사로 나왔던 진증 태감과 정수훈 추관에 대해 뒷조사를 부탁하였다. 그리고 편지로 답해달라 말했지만 언제쯤 응답을 받을지는 알 수가 없었다. 지금은 왕준서의 위치 역시 어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황성 내의 혼란기였기 때문이었다. 왕준서는 가급적 빨리 알아보고 편지를 보내기로 약속하였다. 


해녕총관은 진원성에게 두 여인과의 연분을 맺기로 하였던 것을 말하고, 먼저 두 여인과 혼인을 한 다음에 임신을 시켜서 이혼하면, 왕준서가 아들을 낳은 한 여인을 데려가기로 하였다고 말을 하였다. 이미 배 속에 아이를 갖은 네 부인은 입을 모아 진원성에게 두 여인과 혼인하도록 부탁하였으며, 결국 6 월 11 일 진원성은 두 여인과 물 한잔 떠놓고 혼례를 올렸다. 그리고 먼저 설이가 먼저 아이를 갖기로 하였으며, 월이는 치료가 끝나면 그 다음으로 아이를 갖도록 하였다. 


진원성의 요즈음의 마음은 어서 빨리 주변 상황이 다 정리되고 홀가분해져서, 아무 때라도 떠날수 있게되길 바라는 상태였다. 그래서 왕준서에게 양자를 주는 문제도 그렇게 해서 해결된다면 군소리 없이 그렇게 마무리가 되기를 바란 것이었다. 왕준서에게 양자를 주는 문제는 몸이 정상으로 된 후에 갖게된 부담이었다. 부인들에게 모두 한 아이씩 안겨주고, 그 다음 부모와 가족들의 혈채를 청산하면, 그 때에는 비로소 홀가분해지리라 생각되었다. 해녕총관들 이하 7 명의 부인들은 딸 4 명을 연달아 낳을 수도 있기 때문에 자기 아들이 양자로 가게되지 않게된 것을 환영하였다. 이렇게 진원성은 설이, 월이와 혼인을 한 것이다. 진원성은 이 두 미녀와 혼인한 후, 가까이 가면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만지고 싶어지는 것을 느끼고 스스로 놀라게 되었다. 이쁜 미녀인 해녕총관이나 소주총관에게서는 그런 적이 없었는데 이게 왠일이란 말인가?


왕준서는 이제 북경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열흘이 지난 후 황궁에 들어가서 황태자 궁의 총관 왕안 태감을 만나서 황태자의 몸에 있는 병을 말하고 비밀리에 황궁 밖의 의원을 불러다가 황태자와 관련된 태자비와 궁녀들을 모두 치료 받도록 하였다. 또 황태자로 부터 춘묘와 하리를 하사받은 두 관리 손신행과 양련에게도 연락하여 관계된 사람들 모두 치료를 받게 하였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왕준서는 태자파의 추천으로 병장국 위조 태감 속하의 병장기 공창(兵仗器 工廠)의 감승(監丞)으로 품계가 한 등급 올랐으며, 경성 밖의 한 무기고에 매일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황성을 벗어나서 경성 밖 일터에 나가니 진원성이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던 것을 들어줄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왕준서의 어른이신 왕충 태감은 이번 사건의 여파로 현직에서 물러나게 되었으며, 그제서야 왕준서를 양아들로 맞아들였다. 그리고 얼마 후 북경의 집을 왕준서에게 물려주고, 고향인 하남성 남양부로 내려가 살게 되었다. 왕충태감은 고향에 내려가면서 양아들인 왕준서를 칭찬하였다. '네가 자경궁 아이들과 만든 장난질 같은 꾀로 황태자를 살렸으니, 내가 황궁에서 46 년 동안 했던 일보다 더 큰 일을 해냈구나. 너는 나보다 충신이다.' 왕준서는 위조 태감과 상의를 하고, 위조는 다시 절친한 자경궁의 위충현 태감과 상의를 하여 자경궁과 병장국 환관들끼리 내기를 만들어서 한 달에 한번씩 은자 네 량을 일년 반 동안 손해를 본 것이었다. 이 일로 황태자를 구했다는 성과에 비하여, 그 동안 들인 은자 일백 량은 너무나 헐값이었다. 왕준서는 공창 감승으로 나가서 매달 일백 량씩 아래에서 챙겨주는 은자를 받게 되었다. 왕준서는 은자는 받았지만, 무기의 숫자가 틀린 것은 눈감아줬어도, 불량품 무기는 색출해 내는 특별한 감승으로 소문난다. 감승들은 보통 불량품일지라도 숫자를 맞추는 것에 더 고심하였던 것이다. 


**  **


만력 43 년 6 월 2 일 오후 회음현 부성(府城) 내의 양회염운사사(兩淮鹽運使司)에서는 양회염운사 포상현(包象賢)과 세사(稅使) 한기영(韓基英) 태감(太監)이 마주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경성으로 부터 황태자 궁에 무뢰가 침범하여 몽둥이질을 한 사건을 이제야 전해들었던 것이다. 이게 어떻게 일어난 일인지는 누구의 설명없어도 서로 잘 알고 있었다. 아무 말없이 서로 바라보기만 하고 있는 시간이 반시진이 넘어가서야, 포상현 염운사는 입을 열었다. 


"한 태감님, 이제 그만 돌아가 보세요."


"포 운사님은 이제 어찌 하시렵니까?"


"할 말이 없네요.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저도 이제는 더 이상 뭐라 할 말이 없네요. 시운(時運)이 따르지 않았으니 ... 지시에 따라 황태자 측에서 꾸민 음모일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으로 상소(上疏)를 한 통 올려주시길 바랍니다. 아직 우리측 사람들이 건재하여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의기소침하지는 마십시요. 내일이라도 좋은 소식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이제 가보겠습니다."


"태감님 내일 오후에 한번 더 방문해 주시지요. 제가 오늘 밤 새워 상서문(上書文)을 작성하여 내일 중으로 마감하여 보내려 합니다. 한번 읽어주시고 문구교정을 봐 주세요. 논점은 '복왕이 맘먹고 일을 꾸몄다면, 어찌 한 사람만을 동원했겠느냐? 또 이렇게 하여 결과적으로 누가 가장 큰 이득을 보았느냐 하는 점을 볼 때에, 태자당에서 스스로 꾸민 일이지 않는가 추측되는 바다.' 이것입니다. 이렇게라도 한 힘 보태드려야 하겠습니다."


이날 오전에 세사(稅使) 한기영(韓基英) 태감(太監)은 북경으로 부터 도착한 소식통에게 거사가 실패하였다는 소식과, 진행과정에 따라 어떤 내용의 상소문을 올려달라는 지시 내용을 받게 되었다. 그런 소식을 포상현 염운사에게 전하니 포 운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던 것이다. 이날 오후 포 염운사는 벼루에 먹을 갈면서, 머리 속으로는 여러가지의 문장을 뽑아 올렸다가 내렸다가 생각을 가다듬어 나갔다. 


***  ***


임향주는 지난 2 월 말 산동지주회의에서 결정된 바, 노상(魯商) 측과 회표 유통에 관하여 협의를 하였으며, 그 결과는 예측한 대로 좋지 않았다. 노상에서 주장하는 것은 산동성 여섯 개 부(府) 중에서 청주부, 래주부, 등주부는 사실상 회표의 유통이 거의 필요가 없는 지역으로 그곳에 지점을 두 곳씩 낸다면 한 군데 지점당 일 년에 오백 량 씩 총 삼천 량 유지비를 들여야 할텐데, 종래의 구전 즉 5 푼을 부과해도, 타성에서 건너온 회표를 은자로 환하는 금액이 육만 량이 되지 못할 것이므로 그만큼의 수입이 발생할 가능성이 없어서 타산이 맞지 않는데, 더더욱 구전을 2 푼으로 해달라니 터무니없다는 것이었다. 


노상은 이미 제남부, 동창부, 연주부에 회표를 운용하고 있으며, 동쪽의 3 개 부는 은자로 환(換)할 필요가 있을 경우 제남부에서 해오고 있었다. 그러므로 노상의 입장에서는 동쪽 3 부에 지점을 내는 것은 비용을 증가시키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수익이 증가되지는 않는 일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임향주는 5 월에 흑응회의 회수부에 상의할 것이 있다는 연락을 하게 되었다. 회수부의 초무량 회수와 백시준 회우는 일시를 정하여 임향주를 제영반점의 객실에 모시고 이야기를 듣기로 하였다. 이것은 대형님의 장인에 대한 예우이기도 하였고, 상가 계약을 도와준 것에 대한 사례이기도 하였다. 임 향주가 먼저 입을 떼었다.


"흑응회는 회주를 대형이라고 부른다고 하던데 그렇지요?"


"예, 그것은 아마도 나이가 아직 젊고, 회주라고 부르는 것이 아직은 어색한 점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상가 임대에서 도와주셔서, 대형은 임향주님께 고마운 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 하 하, 그것은 우리 지주들끼리 힘을 모아서 임모(林某)의 얼굴을 한번 닦아준 것이지요. 그 일은 다행스레 일이 잘 되었습니다. 지주들에게서 들어오는 소식은 상가들이 제법 활성화 되어간다 그러데요. 그런데 흑대형은 또 어디로 출타 중이신가 봅니다."


"우리 대형님이 워낙 출입이 제한이 없으므로 제게 말씀해 주시면 잘 전달이 되게 하겠습니다.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요."


"흑응회은 지금 전장업 아첩을 받아두고 있지요? 그런데 왜 회표는 발행하지 않는가요?"


"회표란 게 누가 알아주고, 돌려써야 회표지요. 혼자서 회표라고 말해봐야 공허한 소리가 되고 말지요."


"우리 용호상박 하는 지주들끼리 하는 이야기지만 동쪽에 세(三) 부가 있는데 그 곳은 회표가 없어서 좀 불편하다고 합니다. 흑응회 전장에서 회표를 발행하고, 전장업을 제대로 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는데... "


"산동성에는 지금 노상이 회표를 발행하고 있습니다만."


"노상에서는 회표를 발행하고 있지만, 동쪽의 세 부는 회표를 바꿀 지점이 없어요. 그러니 동쪽 3 부는 회표없이 살고 있는 것이지요."


"지금 용호상박 회에서는 산동성 동쪽 3 부에서 회표를 썼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지요?"


"예, 바로 그거에요. 회표가 쓰이면 은자를 많이 움직일 필요도 없고... 그런데 노상과 이야기를 해보았는데, 사실 흑응회보다 먼저 노상을 만나보았어요. 그런데 노상에서는 산동성 전역에서 한다면 남경과 북경 간에 적용하던 5 푼을 구전으로 적용할 생각을 하더란 말입니다. 이것은 좀 잘못된 것이지요. 남경과 북경은 거리가 거의 일천오백 리에 달하지만 산동성은 끝에서 끝까지 일천 리 정도잖아요? 우리 용호상박 지주들은 5 푼이 아니라 2 푼 정도만 구전을 뗀다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 흑응회에서 구전 2 푼으로 맞춰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임향주는 노상이 구전 오 푼을 적용하면 동쪽 3 부에서도 회표를 운용할 지점을 낼 것처럼 말했지만, 이것은 사실과 달랐으며, 한술 더 떠서 구전을 두 푼으로 해서 동쪽 3 부에서 회표가 운용되도록 해달라는 요구를 내놓았던 것이다. 노상에서는 마치 구전 두 푼으로 해달라고 한 것 때문에 이야기가 결렬된 것처럼 들리기도 하는 말솜씨였다.


"그러니까 회표의 구전을 2 푼으로 해야한다. 회우님, 이게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제 생각으로는 대형님에게 말씀드리기 전에 좀 잘 생각해봐야 할 걸로 봅니다. 임향주님, 이 자리에서 바로 응락할 수 없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구전 2 푼으로 하는 것은 정말 쉽지않을 것 같습니다. 제가 전에 계산을 놓아본 적이 있습니다만, 회표가 환이 되는 지점을 둘려면 년간 육백 량, 구전 2 푼이면 지점 당 삼만 량은 환이 되어야 채산이 맞습니다. 오늘은 임향주님의 요청을 듣고, 돌아가서 정리를 하여 대형님의 재가를 받아서 다시 임향주님께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럽시다. 우리가 좀 무리한 욕심을 낸 것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해보지만... 그러나 우리 입장도 좀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2 푼이 정 어렵다면 3 푼으로 해서라도 일을 만들어 주세요."


"산동성에 주(州)는 열다섯 개이며, 제남부는 현(縣)이 스물여섯 개이고, 연주부는 스물둘, 동창부는 열네 개이고, 청주부는 열두 개, 등주부는 일곱 개, 래주부는 다섯 개인데, 청주부까지는 그렇다 해도 등주부, 래주부에 지점을 낸다는 것은 무리라 생각이 됩니다. 등주는 주둔하는 군병들이 많아서 조금은 낫겠구만요. 래주부는 가장 회표거래가 없을 곳인데..."


"우리 지주들이 그런 점을 감안해서 흑응전장을 많이 이용해줄 것이라 기대를 해 주시라고 말씀드립니다. 금번 상가의 계약에서도 임모의 얼굴을 내세워 손익 같은 것 따지기 전에 지주들이 힘을 모아보자는 취지가 먼저였습니다. 등주, 래주에서 손해본 것을 제남과 연주, 동창에서 만회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해주길 바랍니다."


"예, 말씀 잘 들었습니다."


"언제쯤이나 답변을 들을 수 있을지... 참 한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할려면 기왕에 하는 것 내년 이맘 때쯤부터는 산동성 전체에서 흑응전장의 회표가 상통(相通)되기를 기대해보겠습니다."


"예, 지금 대형님은 부재 중이시라 돌아오시면, 상의를 드린 후 바로 찾아뵙고 답변을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