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신제(제5부)

제 064 회 종단(宗團) 통해 구난(救難)하다

금박(金舶) 2017. 1. 22. 12:04


진원성과 마유친은 1 월 17 일 낙양성을 출발하여 1 월 20 일에 서안에 도착하였으며, 진주를 들르지 않고 샛길로 하여 다시 1 월 27 일에 평량 공동파에 도착하였다. 급히 서두르느라고 옷차림도 허름해지고 말도 사람도 힘겨운 여정에 시달린 흔적이 역력하였다. 마유친으로서는 자기가 공동파에 있을 적에는 비단 옷만을 입었으며, 오전 수련하는 시간이 지나면 항상 주위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위치였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모두 과거의 추억일 뿐이다. 그러나 진원성도 마유친도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서 산에 올라 조방도장을 청해서 만나게 되었다. 


공동파에서 진원성은 이미 유명한 사람이 되어 있었으며, 곧바로 안내되어 산에 오를 수 있었다. 산문(山門)도, 산문 위에 걸린 현판(懸板)도 모두 낡고 글씨의 칠이 벗겨진 것이, 계단도 군데 군데 허물어진 것이 보였으니, 손을 댄 흔적이 오래 되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말 네 필을 맡겨두고, 진원성과 마유친은 안내해주는 동자(童子)를 따라 길을 걸었다. 마유친으로서는 여러가지의 소회가 심중에 오갈 것이었다. 마침내 조방 도인을 만나게 되었다.


"조방도장(朝方道丈)님 오랫만에 뵙습니다. 그간 강령하셨습니까?"


"조방도장 님, 아니 사부님 오래만에 뵙습니다."


"마유친 시주님은 이제 사부라 부르시면 틀린 호칭입니다. 두분, 어서 오십시오. 무슨 일이신가요?"


"먼저 좋지 않은 소식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병을 치료하는 일에 성공하지 못하여 도장님의 공력을 돌려드리는 일은 아주 가망이 없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위로해 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뭐, 그렇다니 하는 수 없지요. 세상만사 바라는 대로 다 이룰 수 없는 것이니..."


"그리고 제가 여기 마유친 누이와 혼인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처의 친정이나 다름없는 공동파의 어르신께 꼭 전해야할 소식이라 생각하였지요."


"사부님, 저는 ... 제가 사고무친(四顧無親)이라 대형께서 저를 부인으로 삼아주신 것이지요. 저는 만족 합니다."


"진 시주가 외로운 아이를 데려갔으니 잘 보살펴 주시오."


"조방도장께 은자를 조금 시주 하려합니다, 받아주십시오. 오만 량입니다. 올라오면서 보니 현판도 색칠이 벗겨졌고, 계단도 허물어진 데가 많이 있더군요. 이것으로 조그만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유친 누이를 잘 키워주셔서 제게 보내주신 데에 감사를 드립니다."


"뭐요? 오만 량... 아니 오백 량도 아니고 오만 량... "


"......"


"이것은 장문인(掌門人)께 말씀 드려야만 하겠군요."


조방도인은 동자(童子)을 시켜서 장문인께 뛰어가 통보하라 하고서, 일어서서 진원성과 마유친을 따라오게 하여, 공동파 조현(朝見 볼 견 또는 나타날 현 또는 관덮을 보 간으로 읽음) 장문인을 만나게 되었다. 장문인은 너른 방 한 쪽에 방석을 깔고서 앉아 있었으며, 이렇다할 장식도 없었고, 흔한 탱화 한 장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북쪽 벽에 전서체로 시시비비(是是非非 =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른 것이라는 말) 네 글자가 씌여진 현판이 걸려있을 뿐이었다. 이것은 조현 장문인의 문파를 지도하는 지침이었다. 


"빈도는 조현이라 하외다. 진 시주는 우리 공동파와 인연이 많은 분이시오. 마유친 제자와 혼인을 하셨다니 부디 행복하게 오래도록 잘 사시오. 이렇게 큰 은자를 베풀어주시니 우리 도문(道門)이 발전되도록 더욱 정진하라는 채찍으로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오늘 찾아뵌 이유는 조방 도장님께 감사를 표시하는 것이 하나였고, 다른 하나는 조현 장문인께 한 가지 부탁을 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저에게 부탁을... 무슨 말씀 이신지 하십시오."


"지금 중원의 서북 쪽은 지난해에 가뭄 피해가 깊어서, 유리(流離)하는 만성들이 많고, 여러가지로 어려움을 겪는다 합니다. 그래서 제가 공동파의 힘을 빌어서 그들에게 땅을 살리고 소출도 얻도록 하고자 합니다. 제가 공동파에게 은자를 맡기겠습니다. 그것으로 만성들에게 미곡을 나눠주시고, 대신 만성들이 샘을 파고 땅을 가꾸어 금년에는 소출을 얻도록 해주십사 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관아에서 해야할 일이 아닙니까?"


"관아에서 해주면 좋지면 그들이 힘이 없으니 누군가가 나서서 하면 좋은 일입니다. 공동파에서는 저의 이름을 감추시고, 만성들에게 땅을 정해주고 그들이 땅을 가꾸도록 미곡을 나눠주어서 힘이 되어주시면, 땅도 죽지 않고, 만성들도 살아날 것입니다. 어떻게 해 주시겠습니까?"


"좋은 일이니 두 말없이 해야겠지요. 그러나 그런 일은 은자가 좀 많이 들어야 할 일인데 일 이만 량으로는 힘든데..."


"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장문인께 칠십만 량을 내놓겠습니다."


"헉, 칠십만 ... 흐음..."


"이것으로 하루라도 바삐 서둘러서 만성들을 구제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지금이 한참 어려울 때입니다. 아마 봄에 파종할 종자까지 다 먹어버렸을 것이니 돈을 쓰더라도 서둘러서 풀어주셔야 합니다. 가능하면 아까 드린 오만 량도 빨리 풀어서 산문부터 손봐 주시면 어려운 만성들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아, 정말 진시주님은 활선이십니다. 사실 지금 진주(秦州) 이서(以西)는 황량하고 민란이 일어나기 일보 전입니다. 이 은자를 빨리 풀어서 정말 만성들에게 도움이 되게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장문인의 말씀 듣고 안심이 됩니다.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산동 제남에 2 월 15 일 까지 가야할 일이 있는데, 이 일이 너무 중요한 지라 시간을 쪼개서 억지로 왔습니다. 지금 일어나 가보겠습니다."


"제남에 2 월 15일 이면 만만치 않겠군요. 파발마(擺撥馬)라도 쉽지않을 길인데..."


"예, 유친누이 일어섭시다. 옛 사부님과 회포 풀 시간도 드리지 못하여 죄송하오,"


"아, 이거 이렇게 가시면 너무 섭섭한데요."


"다음에 제가 한번 더 오겠습니다. 제가 두 아이를 보내서 공동파 무술을 조금만 배우게 하기를 원하는데 아직 사람은 구하지 못했군요. 나중에라도 조방도인께서 거두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가능한지요?"


"예, 물론입니다. 두 아이는 아무때나 보내십시오. 최선을 다하여 가르치겠습니다. 그런데 시일이 촉박하다니 붙잡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교단이 시주받은 은자를 가지고 자기 명의로 만성들에게 구제를 베풀면, 그 만성들은 두고두고 기억하여 그 교단에게 은혜를 갚게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즉 교단에게는 결국 나중에 몇 배로 돌아오는 것이기에 어떤 교단이든지 이런 일을 자기 본연의 일로 생각하고 잘 처리해줄 것이 틀림없었다.


진원성은 공동파를 방문하여 번개불에 콩 구어먹는다는 표현대로 후다닥 처리하고 되돌아섰다. 그 다음은 길을 되집어 오는 것이었다. 해가 조금 길어지는 것에 맞춰서 말타는 시간을 조금씩 늘리며, 서안까지는 공동파의 엄호를 받고서 지름길이 있으면 그 길을 타고서 오게 되었다. 게다가 공동파에서 진원성이 타고왔던 지친 말을 바꿔주어서 서안에는 2 월 3 일에 도착하게 되었다.


진원성은 바로 대흥선사를 찾아갔으며, 불과스님을 찾았으나 이미 돌아가셨음을 알게 되었다. 불과스님의 후임으로 법주가 되신 보광(寶光)스님에게 진원성은 불과스님과의 인연을 말하고, 오만 량을 내서 대흥선사의 수리에 사용하도록 하였으며, 따로 삼십만 량을 내어 공동파에서 했던 것과 동일한 부탁을 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없어서 금방 되돌아 나왔으며, 다시 화음현까지 달려서, 화산파에 오르게 되었다. 


화산파에는 처음이지만 사연을 말하고 장문인을 만나게 되었으며, 거의 동일한 과정을 거쳐서 화산파에도 은자 삼십오만 량을 시주하게 되었다. 이미 어두워졌으므로 화산파에서 하루 잠자리를 얻었으며 그 다음 날은 동쪽으로 난 길을 열심히 밟았다. 낙양은 그냥 지나치고 정주에 이르러서 진원성은 소림사를 향해 말을 제촉하였다. 2 월 9 일 밤은 소림사의 아래에 있는 작은 반점에서 지내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소림사의 대문을 두드렸으며, 뜻을 전하고 소림사에게 하남성과 산서성의 난민을 돌봐주기를 부탁하고 칠십오만 량을 내놓았다. 진원성에게는 이제 은자 회표가 이십사만구천구백 량이 남게 되었으며, 2 월 14일  늦은 밤에야 가까스로 흑응장원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그 다음 날은 2 월 15 일로 두 번째의 응신제 제삿날이며, 이 날은 아린총관과 함께, 북경과 항주와 남해중 가장 많이 회복한, 남해총관을 제사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이 날은 등주부의 식민들 중에서 남정들이 모두 참석하였으며, 낙양의 준갈이부족 700 명이 참석을 하였고 나머지는 제남의 수지원과 학숙에서 참여를 하였다. 또 회원들이 자기의 처자식들을 보내서 구경하게 하는 경우도 많았으므로 조그만 소산의 중단이상이 온통 사람으로 꽉 차게 되었다. 이번에는 제사 전에 지난 번의 제사 올린 일들의 소문이 퍼져서 참석자들 모두 진행하는 일에 대해서 미리 알고 있었기에 더욱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청둥오리 솟대 위에 양 다리 한쪽을 잘라서 올려두었는데, 독수리가 잊지않았는지 제까닥 찾아와서 채어 날아갔다. 아마 먹을 것을 올려놓지 않았던 날들도 멀리서 청둥오리 위에 먹을 것이 있나없나 감시를 쉬지 않았을 것이다.


마유친은 몸살이 나서 사나흘 고생을 하였으며, 진원성 역시 여독을 풀려고 사흘을 쉬고서 2 월 19 일 부터 다시 빈청에서 일을 보았다. 오후 미시가 되자 회수부에서 먼저 찾아왔다. 진원성은 기택에서 얻은 은자 회표의 처리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 공동파, 대흥선사, 화산파, 소림사에 총 이백이십만 량, 또 관부에 밑닦음 용도로 이십만 량을 쓰고 남은 것이 이십사만구천구백 량인데, 이십만 량은 회의 관고에 넣고, 나머지 사만구천구백 량은 자기가 따로 쓰겠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회수부의 3 명은 이백이십만 량이 그렇게 없어졌다는 말을 듣고서 입맛을 쩝쩝 다시게 되었다. 회수부 3 명이 서기가 적은 기록물에서 260만 량이라 읽었을 때에는 가슴이 두근거리기 까지 했었는데... 진원성은 간단하게 통정어사의 대행자로써 일을 하였으니 응당 몰수한 은자는 나라를 위해 써야할 것이었음을 설명하였다. 또한 낙양에 2 월 중 신임 하남지부 이하 관원이 도착하면 기택의 문제와 낙양보호사업과 미곡저가판매의 문제를 양해하도록, 이미 이야기해 놓았다고 말해주었다. 미곡저가판매는 뚝심을 필요로 하는 일이므로 밀어부치자고 말하고, 그 다음은 회수부의 보고를 들었다.


회수부에서는 낙양에 제남에서 적목단 출신 인력 중에 250 명을 다시 낙양에 보내고, 준갈이부 500 명을 합해서 보호사업과 미곡저가판매를 안정시킨 다음에, 준갈이들이 물정에 익숙해지면 인력을 줄여가면서 주택건설을 진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며, 준갈이부 200 명은 제남으로 데려와 여러가지 일에 분산 투입하여 물정을 익히고 적응하게 하자는 의견을 냈다. 즉 그것을 진원성에게 결정해달라고 해서 진원성은 회수부가 알아서 결정을 하고 앞으로는 정 결정하기 어려운 것만 상의해주도록 지시하였다. 그러나 진행되는 내용은 모두 보고해 주어야만 어떤 일을 대형으로서 추진할 수 있음을 말하였다. 이것으로 회수부는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에 책임을 지는 그런 방향으로 나갈 것이 방침으로 정해진 셈이었다. 


진원성은 1 월 21 일까지 흑응 2 장원의 통물장원이 5 대 상단의 임대가 성사되지 못하였으므로 이제부터 2 장원 임대를 산동 지방 소 상단에 섭외를 해서 임대를 내어주기로 하자며 그것은 3 월부터 추진하자고 하였다. 먼곳에 물목을 보내는 무역일과 낙양의 일이 갑자기 생겼으므로 2 월에는 무역일과 낙양 일에 집중하자는 뜻이었다. 진원성은 2 장원 임대 문제를 장인이 되는 오지회 임향주에게 도와달라고 해볼 참이었다. 수 십 년간 제남을 바탕으로 살아온 임향주의 경력은 이런 일에 아주 적격일 것으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2 월 19 일 저녁식사 후 진원성은 아직 덜 회복된 북경총관을 빼고 나머지 총관들 일곱과 총관조 여덟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금번 낙양행의 일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먼저 보밀인재를 외우게 한 다음에 진원성은 설명을 시작하였다.


"이번에 소주총관을 데리고 낙양과 서안, 또 공동산에 다녀왔습니다. 그러니 두 달 걸려서 왕래해야 할 길을 한 달만에 갔다왔으니 소주총관이 몸살이 나서 며칠 고생할만 했고, 나도 많이 힘들었습니다. 돌아와보니 모두들 잘있어서 다행이고요, 특히 북경과 해녕이 더 나빠지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


"낙양에 간 이유는 적목단의 원한을, 또 해녕총관의 원한을 갚으러 간 것이에요. 기택이 모든 범행을 저질렀으며, 이번에 기택을 소멸시키고, 전재산을 몰수 하였습니다. 기택이 갖고있던 전토는 땅없는 만성들에게 경작하게 하여 세금을 3 년간 착실히 내면 나눠줄 것이고, 기택에서 압수한 은자는 총 260만 량인데, 빈민구제를 하는데 써달라고 시주를 하였어요. 섬서 평량의 공동파에 75 만 량, 서안의 대흥선사에 35만 량, 화음의 화산파에 35만 량, 하남성 정주의 소림사에 75 만 량을 시주하였습니다."


"많기도 해라... 기택에서 그 많은 은자를 압수하신 것이네요?"


"소주총관이 이뻐서 공동파에 은자를 곱절로 시주하셨구만요?"


"각 사찰에 5 만 량 씩은 사찰을 수리하는 데에 쓰라고 같은 량 시주한 것이고, 공동파와 소림사가 은자가 많은 것은 공동파가 있는 진주 서쪽으로는 미곡 시세가 한 섬이 동전 700 문이지만, 낙양 정주는 350 문이에요. 또 공동파 해당지역은 만성 수가 작지만 감당할 범위가 넓어서 그것도 감안하였으며, 소림사는 산서성과 하남성 두 성을 감당해야하니 은자가 많았던 것입니다. 소주총관이 이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 때문에 은자를 많고 적게 하지는 않았어요."


"대형님은 그런 것을 미리 정확하게 계산하신 거군요.."


"소주총관도 공동파에 많이 시주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네요. 저는 똑같이 한 것이에요. 그래야 공평하지요. 기택의 재물은 국가에서 몰수하였고, 국가에서 만성들에게 베푼 것으로 공적인 일입니다. 저는 심부름만 하였습니다."


"그러면 해녕 형님의 복수는 모두 끝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