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월 19 일 종일 남쪽의 소산에서 심체에 황금독수리(金鷹)를 날리는 연습을 하다가, 장원에 돌아온 진원성은 흑돈을 통해서 전달되어 있는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 겉봉을 뜯어보니 그것은 통정어사 대보인의 답장이었으며, 진원성은 한번 읽고서 잘 갈무리를 해두었다. 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므로 차라리 내일 오후에 집무실에서 차분히 생각해볼 참이었다. 편지는 두 장의 종이로 되어 있으며, 하나는 편지요, 다른 하나는 어사인(御使印)이 찍혀진 문서첩이었다.
'진원성 아우의 건재(健在)한 소식을 오랫만에 듣고 반가웠다. 나는 지금 폐관수련(閉館修練) 중이라 당분간 출입을 할 수 없으니, 아우가 전례(前例)에 따라서 잘 처리하고, 내게 결과만 통보해주기 바란다. 동봉한 관명부장인첩(官命付章印帖)을 이용하여 성부주현(省府州縣)을 담당하는 광감세사 환관에게 말하여 집행하는 일에 관아의 협조를 받고, 필요하면 관병을 동원하도록 하되, 아무쪼록 민폐(民弊)가 적도록 노력할 것을 명심해야한다. 대보인서(戴寶引書)'
폐관수련(閉館修練)이란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전까지는 나오지 않겠다고 정하여 용맹정진하는 것으로 식사와 대소변 등 최소한의 외부연락 만을 취하며 수련에 전심전력(全心全力)을 다하는 것이다. 그래서 폐관수련에는 꼭 보조인이 필요한 법이었다.
'관명부장인(官命付章印). 호국감찰통정어사(護國監察通政御使)인 대보인(戴寶引)은 산동성 제남부 흑응회의 만성 진원성에게 다음의 명을 통정어사를 대신하여 수행하도록 권한을 부여한다. 명(命) - 대명국(大明國)에 위해(危害)를 끼치는 악적(惡敵)을 제거하라. 부언(附言) - 이 관명부를 일람한 정1품(= 최고의 품계이며, 오군도독부의 도독 즉 최고위 장군직을 말함) 이하 관속(官屬)은 이유여하간(理由妊何間) 기자(其者)를 지원하라. 호국감찰통정어사(護國監察通政御使) 대보인서(戴寶引書) 만력 41년 12 월 2 일. 날인(捺印)'
명나라는 황제의 감찰기관으로 중앙정부에 도찰원(都察院)을 두었으며, 도찰원의 책임자는 정2품 직이었으므로, 오군도독부에 지시를 할 권한은 없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황제가 직접 오군도독부의 도독에게 내리는 명령과 같음을 뜻하는 내용으로 명나라의 모든 신료들이 해덩되는 것이다. 즉 호국감찰통정어사의 직위가 정1품보다 높고, 황제의 직접 명령과 같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진원성은 관장(官場)의 물을 먹어보지 못한 지라 이런 깊은 의미를 아직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만 호어르신이 했던 것을 기억해보고는 필요시에 지부에게 말하여 추관을 동원할 수는 있겠구나 하는 정도로만 생각했을 뿐이며, 이번 하남부에 관한 일에서는 그 정도로 충분할 것이었다.
12 월 20 일, 미시에 진원성은 내장원 빈청에서 대보인 형의 답장을 서 너차례 읽었으며, 숙고하기 시작하였다. 우선 기택이 주모를 납치하였다고 전제를 한 후에, 기택이 '대명국(大明國)에 위해(危害)를 끼치는 악적(惡敵)' 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이것은 분명 범죄이며, 그것도 다섯 명을 죽이고 부녀를 납치하여 수없이 강간, 윤간하였으니 분명 중죄인 것은 분명하나 과연 이것을 명나라에 위해를 끼치는 악적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이었다. 이점이 가장 궁금하였다. 이제는 모두 없어졌지만 과거 쇄음수를 쓰는 심의파의 원수는 명나라의 악적임이 분명하였다. 진원성은 이런 부분에서는 공부를 많이한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겠기에, 사람을 보내 회수부의 백 회우를 청해왔다. 그리고 강간 윤간에 관한 것은 제외한 후에 물어보게 되었다.
"회우님, 우리 적목단이 낙양에서 누구에게 다섯 명이 살해당하고 부녀 한 명을 납치당했는데, 그 범인을 잡게되면 그들에게는 어떤 벌을 내려야 적당할까요? 생각하다가 갑자기 이게 궁금해져서 물어봅니다."
"대형님, 그런 경우에는 범인의 일가족을 몰살시키고, 그 아래에 속한 재산 모두는 국가에서 몰수하게 됩니다."
"그 범인이 명나라에 위해를 끼치는 악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 명이 전쟁 중이라면 그 때에는 적국에게 밀통하는 범죄가 가장 중죄이며, 명나라의 안녕에 위해를 끼치는 범죄입니다. 지금은 평화 시기이므로 납치 살해야 말로 가장 중죄이며, 명나라의 안녕에 위해를 끼치는 범죄입니다."
"흐음 그렇군요. 만일에 그 범인이 큰 세력을 지닌 사람일 경우에 자기가 직접한 일이 아니라 아랫사람을 시켜서 저지른 일이라면, 범행을 직접 저지른 아랫사람만 처벌되고 지시한 사람은 죄를 면하고 방면이 될 수도 있습니까?"
"범인이 큰 세력을 지닌 사람이라면 죄는 더욱 크다고 인정될 것이며 더욱 큰 벌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 범죄를 직접 행한 사람도 물론이며 범죄를 지시한 사람은 죄가 두 배로 무겁습니다. 또 범죄를 직접 도운 사람과 간접적으로 도운 사람, 알고서도 고발하지 않은 사람 모두 중형을 받게 될 것이지요. 여기서 중형이라면 장형 80 대 이상이라는 뜻이지요. 대형님은 모르시겠지만 장형 60 대면 살아도 제대로 걷지 못하고, 대부분이 한 달 이내에 죽게 됩니다. 그러니 교수형만 오히려 못한 것이 장형 80 대라는 벌이지요. 그러나 속죄은자를 많이 내고서 죄를 면하는 예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자는 죽을 죄를 지어도 살아남는 경우가 더 많지요. 우리 명나라가 부패하였기 때문입니다. 황족을 상해한 죄가 아니라면, 은자 일백만 량 내면 어떤 죄라도 속죄받을 수 있지요."
"예,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일백만 량이면 무슨 죄든 사면된다는 것을, 은자 백만 량이라... 범죄를 지시한 사람, 범죄를 직접 행한 사람, 범죄를 도운 사람, 범죄를 알고도 고발하지 않은 사람 모두 중형이라면, 같은 조직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이면 모두 해당이 되겠습니다. 그게 아니면 한 조직이라도 범죄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무관한 사람들은 처벌을 받지 않아야 하는 것인가요?"
"대형님 왜 그러십니까? 낙양의 납치범을 고소(告訴) 하시려면 신중해야 합니다. 오히려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하는 수도 많이 있으니까요."
"제가 알고 싶은 것은 한 조직 내에서 범죄와 직접 관련있는 사람과 무관한 사람들을 어떻게 달리 처벌해야 하는지 아니면 함께 처벌해야 하는지 그것입니다. 그런 범죄가 있었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이라면 한 조직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 가지고는 중형을 받는 것이 부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의원이 등창이 나온 환자를 칼로 다스릴 때에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환부 주변에 멀쩡하게 보이는 살까지 모두 잘라냅니다. 한번 수술(手術)을 쓴 김에 재발방지를 위해 철저하게 단속하는 것입니다... 저도 주모납치의 범인은 막강한 세력이라 짐작하고 있습니다. 회우로써 제가 적절한 조언을 해야한다면 무슨 말을 해야하나 생각하였는데, 주모님의 친부이신 임향주께서 입을 다물고 있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알기 전에는 어떤 결정도 해서는 안된다 생각합니다. 대형님은 어쩌면 끝까지 모른척 하고 넘어가야 할 것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아니에요. 이런 저런 생각을 좀 해보다가 궁금해서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백시준 회우가 돌아간 후에 진원성은 다시 생각을 쥐어짰다. 가짜 증인을 만들어내는 일이나 진짜 증인이 증언하지 못하게 하는 일 등, 진원성이야말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소송 과정에 직접 여러번 개입하였던 적이 있는 경험자였다. 또 기택이 납치범이라면, 그들이 정 불리해지면 아마 은자 일백만 량 내놓고 살아날 것을 생각하니, 진원성은 송사로 해볼 생각은 아예 포기하였다. 정말 제대로 복수를 하려면 기택을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수 밖에 없었다. 유일한 방법은 직접 관이 개입하기 전에 모두 섬멸하는 것뿐이었다. 먼저 임향주에게 확인을 해보겠지만 확인이 되면, 그 때는 ... 경가장 전쟁은 대표두님, 호공두 어르신의 뜻에 따라 보조자로써 임했지만, 이제는 주도자가 되어 이 일을 집행할 결심을 하였다. 하지만 그 후에 일어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역시 기택이 섬멸당해도 마땅하다할 죄의 증거일 것이다. 증거가 있으니 더이상 거론하지말고 넘어가게 되어야 하는 것이다. 증거가 있어야 호국감찰통정어사의 입장에서 체면이 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진원성은 오랫만에 낙양의 홍서파(紅書派)를 기억해 내었다. 홍서파는 송사의 관련 서류를 작성하는 일에 관여하여 온갖 협잡을 저지르는 하나의 세력이었다. 낙양단에 있을 때에 진원성은 홍서파와 몇번이나 직접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홍서파 서주의 아들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었으며, 그때에 홍서파의 서주는 '아들의 목숨 값으로 언제든 무슨 부탁이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한번은 아무 조건없이 들어준다'고 약속 하였던 것이다. 아마도 홍서파의 도움을 받는다면 낙양에서의 세력자들 즉 기택, 정가장, 지부나 동지, 추관이나 광감세사 등을 유사시에 죽여도 될 만큼의 부정비리를 틀림없이 찾아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홍서파가 그대로 있는 것일까? 그리고 자기가 가서 도와달라고 하면 약속처럼 도와줄 것인가 하는 것은 알 수 없었다.
12 월 21 일 오후 진원성은 회수부 3 명, 즉 회수, 부회수, 회우를 불러 지시를 하였다.
"새해 1 월 5 일 응신제를 올린 후, 1 월 7 일 제남을 출발하여 며칠 후 낙양에 도착하고, 떼도둑으로 가장하여 하루밤에 어떤 악덕지주의 장원을 완전히 소탕하고 돌아올 것을 생각해봅니다. 이 전쟁의 책임자는 조무웅 부회수입니다. 한명도 놓치지 말고 포로로 해야합니다. 과거 적목단원 중 250 명을 동원하여 습격할 것이며, 장원의 포위에는 낙양에 있는 준갈이족들 용사를 400 명 동원하시고, 장원에서 땅굴로 도망치는 것도 막아야 합니다. 경가장 전쟁을 참고로 하시고요, 먼저 이 전쟁의 계획을 세워서 3 일 후에 가져와서, 다같이 검토 해봅시다. 참 이번에 응신제에 참석한 15세에서 20 세 사이의 회원들도 전쟁의 참관자로 데려가기로 합니다. 이 청소년들 수는 몇 명이나 됩니까?"
"제남에 있는 청소년들 수는 약 200 명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참관시키다니 무슨 뜻입니까?"
"청소년들에게 전쟁에 대해서 가르치려고 합니다. 직접 보는 것보다 더 좋은 교육은 없으니까요."
지시를 들은 3 명은 큰 충격을 받은 채로 그냥 물러갔다. 엄청난 내용이었으며, 좀 정리를 한 다음에 물어봐야 할 것을 정리하여 찾아오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12 월 24 일 미시에 진원성의 집무실에 굳은 표정의 회수부 3 명이 들어섰다. 조무웅 부회수의 손에는 한 뭉텅이의 종이가 들려있었다. 자리를 정해서 앉아 찻물을 한 잔 씩 놓고서 회의를 시작하였다. 조 부회수는 종이를 탁자에 꺼내펴고는 입을 열었다.
"대형님, 기택을 하룻 밤에 털어내는 계획을 지금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니 낙양의 기택이라고 누가 그런 말을 했나요? 그러면 안되요."
"셋이서 이야기를 해보니 기택일 가능성이 가장 커서 기택이라고 말 하였습니다만, 아닌가요?"
"아직은 모르겠어요. 1 월 6 일 밤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공격조가 낙양에 도착하면 그 때에 어디인지 발표할 것입니다. 공격일은 언제로 정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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