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월 7 일 저녁식사 후 진원성의 주위에 총관들이 모두 함께 찻물을 마시고 있었다. 석도총관은 해녕총관과 미리 상의한대로 모두에게 우룸치에서 총관 3 명이 출발해서 오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였다. 그 중 18 세인 총관은 5 번째, 15 세, 12 세의 다른 두 총관은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의 총관이 될 거라고 말해주었다. 마지막으로 수지원에서 하녀로 쓸 여자아이 3 명을 골라와 미리 가르치기로 한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해녕총관은 기분이 좀 언짢았는지 진원성을 향해 입을 열었다.
"대형님, 도대체 총관이 앞으로 몇 명이 더 있나요? 솔직하게 털어놓아요?"
"이제는 없어요? 앗, 커얼친부의 공주가 하나 있어요. 그럼 아홉 명인가? 에... 좀 쑥스럽구만요... (혼잣말로 이것이 모두 내가 원해서 일어난 일은 아닌데...)"
"좋아요. 이제부터는 새로 총관을 맞아들일려면 제게 먼저 승락을 얻으셔야 됩니다. 알겠지요?" [당시에 첩을 들이는 것은 정부인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만일에 그렇지 않으면 정부인은 새로 들인 첩을 괴롭혀서 자살하도록 만드는 일까지도 있었으며, 그래도 주위의 여론은 정부인에게 지지를 보냈다. 그러므로 첩으로 들어갈려는 여자가 있다면 스스로 먼저 정부인을 찾아가서 잘 봐달라고 큰 선물을 주면서 허락을 얻어야했다.]
"알았어요. 그렇게 하겠소."
"총관들은 모두 들었겠지요. 저는 대형님의 첩을 이제는 더 이상 허용하지 않겠어요... 아니 너무 야박하니까 딱 하나만 더 가능하도록 하겠어요. 그래서 열로 정하고 그 이상은 불가능한 것이에요. 모든 총관들 알겠지요... 또 이번에 11 일이 되면 그 다음 부터는 자기 순서대로 제 날짜를 찾아가는 것으로 합니다. 하미총관은 6 번째니까 매월 6 일, 16 일, 26 일, 이렇게 한 달에 세 번이라는 거에요. 알겠지요?"
해녕총관의 말을 들은 다른 총관들은 마음 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부인의 수가 한없이 늘어나서는 좀 곤란한 일이지 않겠는가 하고 모두 생각했던 것이다. 게다가 총관의 순번대로 날짜를 차지하게 되면, 날짜가 없어서 열 명 이상은 늘리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진원성은 부인의 수를 더 늘리는 것은 애초에 관심 밖의 일이었으며, 오히려 해녕총관이 아우님들 앞에서 자신감을 찾아가는 것이 보기에 좋았다. 이제서야 해녕총관이 큰 부인의 제자리를 찾았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밤에 잠자리에 들어서 해녕총관을 살펴주면서, 난정의 성격이 본래 왈가닥 성질인데 그동안 얼마나 마음으로 고통을 겪었을지 생각을 하니 애처로워서 더욱 꼭 안아주었다. 낮에 주모납치 사건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더니 해녕총관이 겪었을 고통이 더욱더 깊게 사무쳐진 것이다.
다음날 점심시간이 지난 후 미시가 되자 백시준 회우는 내장원 빈청에 들어섰다. 진원성은 백 회우가 말할 것이 심각한 내용일 것을 짐작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찻물을 내온 후로도 한참 동안은 회에 와서 2 년간 있으면서 겪었던 소소한 일들을 말하더니 결심을 한 듯 본론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흑대형님, 대부분 회원들은 대형님을 활불이라고 부르고들 있습니다. 아마 알고 계시겠지요? 흑돈회를 처음 함께 만들었던 회원들은 그냥 대형이라고 부르더군요."
"그것은 제가 회원들에게 다시한번 말하여 대형이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활불이 아니니까요. 그러니 활불이라고 부르면 잘못된 것이지요."
"대형님이 활불이라 부르지 말라고 한다고 회원들이 부르지 않을까요? 아마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도 대형님 앞에서는 활불이라 부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대형님이 안계신 곳에서는 활불이라 부릅니다. 왜 그럴까요?"
"아, 그것은 저로서도 어찌할 수가 없는 일이지요. 황제는 자기를 욕되게하면 잡아다가 곤장을 치기도 하였다지만 욕도 아니니 저는 그냥 두고볼 수 밖에 없군요."
"... 대형님, 저는 대형님이 과거에, 또 여행 중에 하신 일들을 모두 자세하게 들어보고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대형님은 활불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대형님 자신은 스스로가 활불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해도 말입니다."
"뭐라 하시든 저는 활불이 아니고, 사실 저는 절에도 다니지 않고, 불경 한 줄도 외우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하 하 하."
"저 역시 석자(釋者 = 불교를 믿는 신도)가 아닙니다. 그리고 대형님을 활불이라고 부르는 많은 사람들도 석자가 아닌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은 대형님을 부처님과 관련 지어서 활불이라 말하지 않지요. 그들은 대형님을 의지하여 어려운 이 세상을 건너가려는 것일 뿐입니다. 물론 그들이 이런 생각을 뚜렷하게 알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그런 염원을 깃들여서 활불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부처님과 관계없는 활불이라고?"
"예, 저는 석자가 아니라 유자(儒者 = 유교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공자님, 맹자님 말씀을 믿고, 주자(朱子)의 성리(怯理)를 믿으며... 저 역시 대형님을 활불이라고 생각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대형님을 주군으로 모시지는 않으려 합니다. 다른 회원들, 초무량 회수나, 조무웅 부회수나 다른 회원들은 마음 속으로 대형님에게 심복을 하고 있더군요. 진정 마음으로 주군을 모시고 받들고 회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그들의 분위기에 휩쓸려 2 년간 함께 지내왔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얼굴 한번도 뵙지 않은 대형님을, 주군으로 모셔야 한다는 점이 심적으로 부담이 되어 왔지요. 대형님, 제가 주군으로 모시지 않아도 대형님과 같이 회의 일을 해나갈 수 있을지 그 점이 염려가 되었으며, 대형님이 돌아오시면 이 문제를 상의 드릴려고 돌아오시기를 기다려왔지요."
"저는 회우님이 하신 일을 이야기로 전해듣고, 또 회의록에서 읽고서 우리 회에 꼭 필요하신 분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것은 따지지 말고 함께 일해봅시다. 저는 활불도 아니고, 주군도 아니고 대형도 아니라 해도 관계없습니다. 저는 흑응회를 피폐한 만성들이 들어와서 쉬었다가 원기를 찾으면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그런 피난처로 만들기를 원합니다. 다른 것은 아무래도 관계가 없습니다. 회우님을 회에서 일하시게 하려면 어떤 말을 제가 해야 합니까? 어떤 조건이라도 좋습니다. 말씀해주시면 가급적 받아들이려 합니다."
"저는 거인(擧人)입니다. 지금 경성에 가서 회시(會試)를 치르고 급제하여 벼슬을 해야할 것이나 이렇게 인연이 되어 대형님을 만났고요. 이제 저의 운명을 한번 걸어보고자 합니다. 저도 대형님을 주군으로 모시지 않는 조건이라면, 이곳 흑응회에서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또 대형님이 저를 같이 일하자고 그렇게 높이 평가를 해주시니 더욱 함께 하고 싶습니다만. 그래서 몇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예, 주군으로 모시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무슨 말씀이라도 하시지요."
"혹시 대형님은 이런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내가 심히 노쇠(老衰)했구나! 이토록 오랫동안 꿈에서 주공(周公)을 다시 뵙지 못하다니...'"
"처음 듣습니다. 저는 공부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의 말을 잘 들어보려 합니다. 하실 말이 있으면 편하게 말씀하여 주십시오."
"이 말씀은 공자(孔子)께서 돌아가실 때가 거의 되어서 하신 말씀입니다. 공자는 평소에 주공을 가장 존경하고 추앙했었다고 합니다. 주공은 주나라를 반석위에 올리신 분으로 공자보다 천 년이나 몇 백 년 먼저 태어나신 분입니다. 공자는 그 주공을 너무 존경하였기에 꿈 속에서도 주공을 자주 만났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 늙으니 주공의 꿈을 자주 꾸지 못한다는 서운한 심정을 토로하신 것이지요."
"몇 백년 전 사람의 꿈까지 꾸다니 공자는 주공을 정말로 존경하고 그리워하셨나 봅니다. 그런데 주공이란 분이 주나라를 다스리신 황제인가요?"
"아닙니다. 당시는 진시황 이전이라 황제라는 말이 아직 없었고요, 황제 대신 왕이라 불렀는데, 주공은 주문왕(周文王)의 넷 째 아들입니다. 주문왕은 강태공을 군사전략가로 모셔와 주변의 세력들을 평정하여 세력을 키웁니다만, 당시에는 은(殷)나라(상 商 나라의 다른 이름)가 강국이라, 첫째 아들은 은나라에 인질(人質)로 잡혀가서 결국 죽고요, 주문왕의 뒤를 이어 둘째 아들이 주무왕(周武王)이 됩니다. 주공은 형인 주무왕을 도와서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반석 위에 올리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주나라는 그 후로 팔백 년을 이어오게 됩니다. 공자께서 주공을 높이 평가하신 이유는 주공은 형인 무왕에 비하여 자질과 능력이 부족하지 않았으나, 그런 점을 모르는 척하고 끝까지 형을 도왔다는 것입니다. 아니 형을 돕는 것이 바로 자기가 만성들의 행복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을 알고 그렇게 행동하였음을 높이 평가한 것이지요. 또 형이 일찍 죽게되자 셋 째인 형과 다섯 째인 동생이 연합하여 왕권에 도전하지만, 그것들을 다 물리치고 형의 어린 아들을 잘 키워 다음 주성왕(周成王)으로 오르게 돕습니다. 그리고 조카인 성왕을 도와서 주나라가 반석 위에 서도록 협력을 합니다."
"자기의 욕심보다 만성의 이익을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것이지요?"
"예, 그렇습니다. 공자께서는 옛날 주나라의 문왕(文王)과 무왕(武王) 시대를 가장 훌륭하게 통치가 되던 시기라 칭송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때의 모습을 다시 이룩하자고 하여 도학(道學)을 궁구하여 펴내신 것이지요. 그 때에는 천하의 인민이 주인(主)이고, 군주는 객(客)이어서, 군주가 일생토록 경영하는 바가 다 천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왕이 되려고 형제 간에도 전쟁을 일으키는 일이 허다한데 주공은 그런 유혹을 뿌리치고 이겨내서 천하인민을 도탄에서 구해낸 것이지요. 그러나 오늘날에는 군주가 통치의 주(主)가 되고, 천하의 인민은 통치의 객(客)이 될뿐입니다. 그래서 군주가 천하를 얻지 못했을 때는, 온통 전쟁을 일으켜서 천하 사람들의 간과 뇌(= 몸과 정신을 뜻함)를 해치고, 천하 사람들의 자녀를 이산(離散 갈라지고 흩어짐)시키며, 부끄러움도 없이 군주 자기만의 재산을 늘리려 하고, 나라를 창업하면서도 부끄러움도 없이 '나는 본래 나의 자손을 위해 창업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
"또 이미 천하를 얻은 뒤에는, 천하 사람들의 골육을 착취하고 천하 사람들의 자녀를 이산시키며, 자기 혼자의 음란과 쾌락을 추구하면서도 그것을 당연시하여 천하사람의 안녕을 진흙 속에 내던져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 군주는 천하의 가장 큰 해악이라 말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차라리 군주가 없다면, 천하 사람들이 각기 사적 이익을 추구하며, 더 복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대형은 이말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그렇게 왕이 만성들을 괴롭히기만 한다면 왕을 버려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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