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행(제4부)

제 078 회 천종(天縱)인가 천손(天孫)인가

금박(金舶) 2016. 11. 5. 08:16


진원성이 올라선 모래밭에 연이어 풀밭이 이어졌으며, 얼마 쯤 더 높은 언덕등성이에는 양떼들 삼십 여 마리가 풀을 뜯고 있었다. 헤질 무렵이니 어쩌면 양 떼를 데리러 조만간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 생각 되었다. 진원성은 벗은 몸을 가려줄만한 좀 후미진 곳에서 기다려보기로 하였다. 이윽고 어스름한 느낌과 함께, 양치기 처녀가 한 사람 나타나더니 양떼들을 몰고서 어디론가 가려는 참에 진원성이 외쳤다.


"여보세요 - - - "


"(진원성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무슨 일인가요? 아 영모님이 기다리시는 분인가보군요?"


"나는 ... 잠깐만... 나는 ..."


"(진원성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누구신지... 이쪽으로 오세요?"


진원성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대로 가만히 있어서는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불쑥 일어나서 두 손으로 앞을 가리고 걸어나갔다. 처녀는 맨몸으로 서있는 진원성을 보더니 놀라서 뭐라고 몇 마디를 외쳤으며, 어디론가 달려가버렸다. 그리고 한 식경 쯤이 지난 후에 처녀는 하얀색 면포를 일장 쯤의 길이가 되게 가지고 나타났다. 그리고 진원성이 보이자 자리에 내려놓더니 양떼를 몰고서 산등성이 위로 올라갔다. 진원성은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면포를 크게 두 조각으로 잘라서 하나는 하체를 둘러서 가리고, 다른 하나는 상체를 둘러쌌으며, 급히 처녀와 양떼를 뒤쫓아 나섰다.


진원성이 얼마 간을 쫓아가자 처녀의 눈에 띄었으며, 진원성은 처녀의 손짓을 보고는 서남방에 보이는 높은 산 봉우리로 올라가라는 의미인 것을 알아차렸다. 그 산까지 거리는 어림으로 십 리쯤 되어 보였으나, 진원성은 거리에 개의치 않고 그쪽으로 방향을 잡고 달리기 시작하였다. 어떤 신체적인 위험은 걱정이 되지 않았으나, 어둑해져가는 무렵인지라 초행길에 방향을 잃을지 하는 걱정을 좀 하면서 발걸음을 빨리하였다. 마침내 봉우리가 보이는 곳에 다다르자 어두움 속에서 한 사람이 서있는 것이 보였다. 이미 유시(酉時)가 깊었을 참이라 진원성은 속으로 해가 긴 여름날인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였다. 어둠 속의 그 사람은 뭐라고 말을 하였으며, 목소리를 들어보니 여자였으나 말의 뜻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여자는 얼른 말이 통하지 않음을 눈치채고 손짓을 하여 따라오라 하였으며, 진원성은 봉우리 근처의 작은 굴로 안내되었다.


굴 안에는 양의 기름을 짜내서 태우는 등불이 냄새와 연기를 피워올리며 겨우 어둠을 한 발 만큼 밀어내고 있었으며, 그곳에는 신복(神僕)을 차려입은 사람, 즉 영모(靈母)라 짐작되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영모는 진원성을 잠깐 바라보다가 손짓으로 앉으라고 하여서 진원성은 가까이에 앉을 만한 곳에 앉았다. 그리고 영모가 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으며, 반가웁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것은 분명히 중원 말이었던 것이다.


"난 시주를 오래 기다렸소. 저기 남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소식 들어온 것이 오래 전인데 이제야 오다니..."


"저는 진원성이라 합니다. 제가 말을 알아들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영모님은 누구신가요? 영모님이신가요?"


"(진원성이 알아듣지 못할 말로 밖에 있을 누구에게 말하였다) 결계(結界 = 도 道를 닦는 사람들에게 의미가 주어져 있는 구역의 울타리)를 풀어라. (중원말로 진원성에게 말하였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천선행사(遷仙行事)에는 잡귀가 들어붙어... 결계를 쳐놓았거든요...  나는 여기서 살면서 천국(天國)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안내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대는 천종(天縱 = 하늘의 성품을 닮은 사람)이기는 한데, 천손(天孫 = 하늘족의 씨로 태어난 사람)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구만요... 그러나 아직 어린 나이인데도 대단하기는 해..."


"중원 말로 말해주시니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있어서 다행이기는 하지만 무슨 말인지 말뜻은 잘 이해하지 못하겠네요. 조금 쉽게 제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씀을 해주세요."


"중원의 말을 오랫만에 해보는 거라서 틀릴 때도 있을지 모르겠구만... 진원성이라고 했지요. 진 시주는 여기에 날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지 한번 이야기를 쭉 해보세요. 이야기를 듣다보면 내가 중원 말을 좀더 잘할 수 있게 될테니... "


"예, 그럼 제가 저의 과거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진원성은 반시진 가량이나 시간을 들여서 자신의 과거사를 영모님에게 털어놓았다. 아린촌에서 가몰(家歿)을 당한 일과, 석도에서 무상도인에게 구함을 받은 일, 열심히 혼천일기공을 수련한 일과 낙양에서 쇄음수에 일격을 맞은 일, 몇 사람의 진기를 흡취하고, 낙양에서 돌제단을 찾은 일, 또 불과스님에게 옴마니반메훔을 배운 일과 몸을 치료하기 위해서 토번의 미라레파 제자를 찾아나선 일, 난주에서 공동파의 진기를 흡취한 일과 토번에서 많은 환자들의 음기를 흡취하고, 캉린포체 신산(神山)에서 영매를 만나서 초승달 바다로 오게된 일, 또 우룸치에서 청랑대의 쇄음수 음기를 모두 흡취하게 된 일을 이야기 하였다. 대영모님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은 탄식을 하기도 하였으며, 안타까웁다는 듯이 혀를 차기도 하였다. 그리고 한마디 말을 하였다.


"으음, 그래서 나를 찾아왔구만. 나와는 분명 인연이 있어서 이렇게 귀한 만남이 이루어졌건만... 실상은 굳이 날 찾아올 필요도 없는 일이기도 하고... 이렇게 만나게 되었으니 진 시주는 궁금한 것이나 해소를 하세요. 그동안 행적에서는 무엇이든 모르는 것이 많아서 애를 많이 태우고, 꼭 걷지 않아도 될 길을 많이 걸었지만... 내게 물어보면 내가 대답할 수 있는 만큼만 대답해 주겠으니 말이에요."


"예, 저는 아픈 것을 치료를 해야할텐데, 어떻게 치료를 해야할까요?"


"어디가 아픈가요?"


"저의 몸에 항문 있는 곳에서 꼬리뼈 있는 곳까지 차가운 기운이 떡이 되게 뭉쳐져 있는 것 말이에요? 그것을 치료를 해야 아기씨가 나온다고 ... 그러는데... 아닌가요?"


"그것은 치료할 필요가 없는 병이에요."


"치료할 필요가 없으면, 저절로 낫는 그런 병인가 보군요?"


"그게 아니고, 내단이 쌓여서 이제 차츰 기체가 이루어지면, 육체의 병은 따질 필요가 없어지는 거란 말이네."


"내단이 쌓여서 기체가 만들어지다니... 그게 무슨 말이죠?"


"지금 진시주의 몸에는 진기가 아주 충분히 쌓여서 저절로 내단이 영글고 그것이 기체로 결태(結胎)되어 자라고 있는데, 그것을 모르다니..."


"제가 진기를 수련하는 공부를 하면 진기가 몸안에서 이리저리 몰려다니다가 서로 꼬이고 합해졌다 나뉘고 하면서 결국 무슨 모양을 그리는 데 그것이 기체를 만드는 것인가요?"


"바로 그렇다네. 진시주는 아직 원정(元精)을 그대로 갖고 있기 때문에 더욱 활발하게 정기(精氣)가 움직여서 기체가 빨리 자리를 잡을 것이네. 아마도 앞으로 5 년이나 7 년 만 더 기체가 자라나면, 그 때는 육체를 벗어버리게 된다네."


"육체를 벗어버린다니, 그것이 무슨 뜻이지요? 죽는다는 것인가요? 아니면 신선이 된다는 것인가요?"


"바로 신선이 되는 것이지. 진 시주의 경우는 아주 특별한 경우이고, 진기를 흡취하는 과정이 모두 선한 마음으로 인한 것이어서, 원신(元神) 즉 기체가 사악함을 물리쳤다네. 이런 일은 정말 기연(奇緣)이라고 할 수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네."


"그러니까 제가 흡취한 양기나 음기나 그 모든 것이 따질 것도 구별할 것도 없이 다 진기로 합하는 데에 문제가 없었나요?"


"옴마니반메훔은 모든 것을 용서하고 관용하고 화해하고 융합하는 것이니, 그런 진언(眞言)을 일심으로 외웠는데 당연히 효험이 나타나는 것이라네. 몸 안에서 진기들이 이리저리 오가는 것을 보면 알테지만, 옴마니반메훔이 남는 것으로 부족한 것을 채우게 바꾸어주고, 너무 빠른 것은 늦춰주고 너무 더딘 것은 좀 재촉해주는 것이라네."


"그것은 불교의 법술이고 진언인데, 신선도와 같이 쓰여도 효험이 있군요?"


"무엇이 불도고 신선도란 말인가, 다 우리 몸 안에서 비롯됨이 들어있으니 그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된 것이지, 본래 우리 몸안에 비롯함이 없으면 오만 가지 법술을 다 동원해도 이룰수 있는 것은 전혀 없다네. 불도가 몽골말이라면 신선도는 중원말이라 하는 것과 같네. 몽골 말이든 중원 말이든 그 말이 진리의 말이면 되는 것이지 않겠는가?"


"아! 이것을 말씀 드려야 하나? 어떻게 하지요?"


"무얼 ... 진 시주는 지금 이대로, 해오던 대로 열심히 하면 이제부턴 순탄하게 제길로 가게 될 것이네. 그러니 늦어도 7 년이면 충분할 것이에요."


"에... 저는 신선이 되면 안되거든요. 신선이 되지 않기로 약속을 했는데..."


"그건 무슨 말인가? 참 듣기 어려운 말일세. 신선이 되어 천국에 가면, 즐거움이 무궁무진하다네. 다들 그래서 신선이 되려고 온갖 시련을 자청해서라도 겪는데..."


"전... 또 집안의 원수도 아직 갚지 못하였고... 신선이 되지 않기로 약속을 하였으니 그 약속도 지켜야 할텐데... 영모님 혹시 제 병만 치료하고, 신선이 안되는 그런 방도는 없을까요?"


"복수를 하는 것도 부질 없는 것이고, 인간 세상의 약속을 지키는 것도 부질 없는 일이거늘... "


"......"


"진 시주는 신선이 되지 않으려고 공부를 멈춘다면... 다시말하면 지금 해왔던 공부를 하던대로 쭉 하지 않으면..., 쇄음수라고 했는가? 그 음기가 발동하여 결국 큰 아픔을 느끼다가 늦어도 7 년 쯤 지나면 죽게 될 것이네. 열흘 정도만 공부를 쉬면, 자정 쯤에 음기가 발동하여 단전에서 한기가 뻗히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될 것이네... 쇄음수 음기가 많아도 너무 많아서 ... 그래도 계속 공부를 하지 않으면 점점 고통이 빨라지고 심해지고 ... 그러니 신선이 되어 육체를 벗고 천국으로 가든가, 아니면 그냥 아픔 속에,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가 죽어가든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할 걸세. 쇄음수 음기가 다 녹아서 심체 내에 정착하려면 ... 어차피 7 년 쯤이 그 한계일세."


"아 정말 쇄음수가 발동하면 그렇게 되는 것은 맞는데 그렇다면 저는 어쩔 수 없이 신선이 되어야할 운명이네요."


"그렇네. 그러나 당장은 아니니 중원으로 돌아가서 주위의 모든 사람들과 작별하고, 주변 정리를 하여 무리없이 생을 정리하고, 어느 산 속 도관이나 연지(緣地)를 찾아가서 공부하면 될 걸세."


"아! 정말 나의 맘대로 되는 것은 아니군요. 그래도 떠나기 전에 시간이 있고, 정리할 수 있으니 그것은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들은 바는 사람은 수명이 짧아서 진기를 많이 모을 수가 없고 그래서 신선이 될 수 없다고 들었는데, 정말 그런가요?"


"그렇다네. 적어도 일백오십 년은 진기를 모아야 하는데... 진 시주는 운이 좋게도 남이 수고해서 모아둔 것을 모두 흡취했으니, 그것은 정말 얻기 어려운 진귀한 인연이 있었던 것이네. 보통은 남의 진기를 몸안에 가져와도 지키지 못하는데, 별종의 법술이 있어서 그게 가능하였구만요."


"별종의 법술이 무엇인가요?"


"그것은... 그게 이단(異端)의 법술이란 말이네. 굳이 이것을 알 필요는 없고, 기왕에 이리 되었으니 그대로 따르는 것이 좋겠네."


"예, 그렇군요."


"신선이 될 때에는 다른 사람에게 쓸데없는 말은 남기지말고, 그냥 불도(佛徒)들이 하는 것처럼 육신은 화장(火葬)을 시키게. 그리고 몰래 천국으로 오르는 것이 뒷사람들에게 좋아요.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의 기사이적(奇事異跡)일 뿐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