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응회(제1부)

제 059 회 특별한 손님

금박(金舶) 2016. 1. 18. 10:52


중추절 지난지 한 열흘 쯤 된 어느 날 사시 경이었다. 역참 사거리 근처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진원성의 빈 흑돈 앞을 흑돈 하나가 막아섰다. 그리고 그 흑돈에서 내려서, 누가 볼새라 얼른 진원성의 흑돈으로 바꿔 올라탄 젊은 여자가 있었다. 비바람을 피할 수 있게 만들어진 흑돈을 타면 밖에서는 그 안에 탄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도록 되어 있었다.


"덕주행 부교까지 데려다 주세요."


진원성은 '예' 라고 대답을 하였고, 반 시진 쯤 후에는 덕주행 관도로 연결되는 부교의 남단에 닿았다.


"손님, 도착했습니다."


"그러면 다음에는 서쪽으로 강변 도로를 타고 한 식경만 가주세요."


진원성은 이 때에서야 들리는 여자의 목소리가 과거에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임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바로 운재원주의 둘째 딸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그 순간 말을 하려던 진원성은 뭐라고 불러야 할지 호칭을 생각해 낼 수 없었다.  


"아, 운재원주님의 둘째 딸이신...... 분이지요?"


"그래, 꼬마야, 나다. 벌써 내 목소리도 잊어먹었구나. 요 멍추."


진원성이 후에도 여러 차례 겪게 되지만, 여자들은 가끔 속마음과는 반대의 말을 할 때가 있었으며, 오늘도 마치 그런 경우였다. '벌써 내 목소리도 잊어먹었구나, 요 멍추.' 이 말은 아마도 '만난지 1 년도 더 지났는데 아직 내 목소리를 잊지 않았구나, 그래서 꽤 나를 기쁘게 해주는구나.' 이런 뜻으로 한 말인 것이 맞을 것이었다.


"아녜요. 잊어먹은게 아녜요. 너무 뜻밖이라 생각해 내지 못하였던 거지요. 그런데 ...... "


"그래, 너무 뜻밖이라고 하는 네 말이 맞을 것이다. 사실 나도 오늘 이렇게 ...... 내가 한 일이 뜻밖이니까."


"예? 오늘 무슨 일을 하셨는데요?"


"지금 내가 이렇게 혼자 성 밖으로 나왔지 않느냐?"


"성 밖으로 나온게 뭐 어쨌다고요. 다시 들어가면 그만이죠."


"난 안들어갈 거거든."


"예?"


"응, 그럴 일이 있단다."


진원성은 이제야 뭔가 심상찮은 일이 있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점소이 생활하면서 둘째 딸에게 생떼를 받아준 경험으로 배운 것이 있다면, 이런 경우에는 처음에 살짝 상대의 기를 올려서 풀어놓아 주면, 상대가 스스로 말을 토해놓고, 그 다음에는 알아서 스스로 답까지 다 토해내는 것이었으니, 진원성은 서서히 흑돈을 강변도로에서 서쪽 즉 율진 쪽으로 향해 끌어가다가 말을 하였다.


"이쪽으로 쭉 가면 율진이 나옵니다. 계속갈까요?"


"그래, 꼬마야 계속 가자구나. 제남으로 돌아오지 말자구나."


진원성은 속으로 찔끔하였다. - 이크, 이게 무슨 일이다냐. 오늘 일진이 좀 사나울 것 같구나. 잘 해야겠구나. - 라고 생각하였다. 제남에서 운재원주의 딸을 그대로 도망치게 만들었다면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끝이 좋지 못할 것임은 뻔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제남 부성으로 돌아가자고 한다면, 그것 역시 수습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으므로 진원성은 이걸 어찌해야 하는가 생각하며, 한참이나 서쪽으로 계속 나아갔다. 그 때에 뒤에서 말 소리가 들려왔다. 


"꼬마야, 잠깐 멈춰라."


"예, 왜그러세요? 여기엔 아무 것도 없는 데에요."


진원성이 흑돈을 멈추자, 둘째 딸이 내려섰다. 그리고 주위를 한 차례 둘러보았다. 진원성은 그녀의 표정에서 소변을 보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야. 꼬마야, 너 누가 보는가 안보는가 잘 감시해라. 내가 오줌을 눌테니까. 너도 여기 보면 안된다. 알았지?"

     

둘째 딸이 인력거 옆에 쭈구려 앉는 것을 보고서, 진원성은 주위를 둘러보며, 누군가가 엿보지 않게 감시(?)하였다. 그러나 주위에는 훔쳐볼 누구가 있기는 커녕 아무도 없었고, 하늘에는 아직도 늦가을 뜨거운 태양이 빛을 내려쪼고 있었으며, 도로의 오른편 아래로는 대청하의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듯 도도하게 흐를 뿐이었다. 


젊은 여자들이 흑돈을 타고 그냥 무작정 어디론가 가달라고 말하는 것을 진원성은 과거에도 몇 차례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주로 고급 기생이었으며, 한나절 흑돈을 타고 제남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거나, 성 밖으로 나들이를 나와서 바람을 쏘이고 돌아가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런 기생들은 오줌을 눌 때도 굳이 진원성에게 감시하라는 둥, 보지 말라는 둥 그런 말을 하지도 않았다. 그럴 때면 또 그들은 미리 먹을 것을 한보따리 싸와서, 진원성에게도 함께 먹자고 거의 강권하다시피 하여, 생식만을 하고있는 진원성을 애먹이기도 하였다. 또 진원성에게 누나와 동생의 의남매를 맺자고 자꾸 강권하여 진원성을 애먹이기도 하였다. 아무튼 그런 날은 진원성으로서는 횡재를 하는 셈이었으니, 거의 무노동으로 은자 반 량이나 한 량의 돈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진원성은 기생들을 돈이 많은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나, 그들은 돈이 꽤 있는가 보았다. 그리고 진원성의 흑돈을 그런 일로 애용하는 사람들이 그들 사이의 입소문으로 점점 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여자도 사람인 이상 두 가지 즉 싸는 것과 먹는 것을 초월할 수는 없었다. 오늘 둘째 딸은 보아하니 먹을 것을 가져오지 않은 것 같으니, 조만간 먹는 것 때문에 굴복할 것이 거의 진원성의 눈에 보이는 듯 하였다. 진원성은 조금만 더 기다리다 보면 무슨 말이 있을 것으로 생각을 해보았다. 짐작으로는 이미 오시가 훌쩍 지나서, 점심 참이 지났으니, 그 다음은 보나마나인 것이다. 진원성은 항상 흑돈에 소금에 절여 말린 생고기를 갖고 있으면서, 한 조각 씩 입에 물고 있다가 물렁물렁 해지면 씹고 삼켰던 것이다.


"야, 꼬마야, 너 배 안고프냐?"


"예, 전 아직 괜찮은데요. 배고프세요? 그런데 이 서쪽 길로는 음식 파는 데가 나올려면 한 시진 정도는 더가야 되요."


진원성은 이 즈음에서 둘째 딸이 굴복하고, 제남으로 돌아가길 은근히 기대하였다. 그러나 둘째 딸이 좀 세게 나왔다.


"한끼 정도 안먹어도 죽지는 않아. 그렇지, 꼬마야."


"예, 그렇기는 하지만요, 저는 수레를 끌려면 좀 힘이 부쳐서요."


"정 그러면, 너 그냥 혼자 제남으로 돌아가거라."


"예? 무슨 말씀이세요?"


"난, 이 길로 율진으로 가서, 북경에 언니 만나려 가려고 한다."


"정 그러시려면, 오늘은 일단 집으로 돌아가시고요, 준비를 좀 하신 후에 다시 나오셔서 가도록 하세요. 북경이라면 하루 이틀 길이 아니에요. 여자 혼자 몸으로 그냥 이대로 가신다면 도착하기도 전에 큰 일이 나요."


"아쭈... 요게, 제법 어른스러운 말도 하네."


진원성은 이제야 둘째 딸의 마음이 조금은 대화를 나눌 정도로 누그러 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즉 자기의 일방적 주장이 무엇인가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되고 인정한다면, 그 점을 꼬투리로 잡아서 서서히 대화를 해나가면 바른 길로 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진원성은 물어보지도 않고 길에서 강변 쪽으로 좀 내려가서 수레를 세웠다. 그리고 둘째 딸에게 말을 하였다.


"여기에서 좀 쉬었다 갑니다......"


진원성은 마차 밑에서 깔고 앉을 수 있는 돗자리 하나를 꺼내서 폈다. 그리고 둘째 딸에게 말했다. 


"여기에 좀 앉아서 강바람 좀 맞으면 기분이 좀 풀릴 거에요."


둘째 딸은 진원성이 하는 행동을 살펴보면서 - 요놈봐라, 한 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네 - 하는 듯한 눈초리였다. 그것은 사실 맞는 말이었다. 이렇게 강변에 앉아 기생들이 바람을 쐬면서 하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살아간다는 것이 참 쉽지 않은 굴곡임을 나이어린 진원성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기생들은 자기들의 애환을 어쩌면 진원성이 어리기 때문에 세상 잘 모르고 이해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며 털어놓을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들의 주위에 많이 있을 어른들에게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왜 진원성에게는 털어놓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그들이 진원성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진원성의 인생 역시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험난한 인생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둘째 딸은 진원성의 말을 듣고서 그 자리에 앉아서 맑은 강물을 내려다 보았다. 물결은 어제도 그제도 마치 몇백 년 전처럼 그렇게 말없이 흘러가고 있는 것일 뿐이었다. 산을 바라보면 마음은 산을 닮고, 물을 바라보면 마음은 물을 닮는다고 하였던가? 둘째 딸은 진원성을 바라보며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듯 보였다. 그러나 진원성은 먼저 말을 꺼냈다. 


"점심 시간이 훌쩍 지났으니, 제가 먹을 걸 좀 마련해 볼께요.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둘째 딸은 이 외딴 곳에서 어떻게 먹을 걸 만든다는 것인지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진원성은 돗자리에서 조금 내려간 쪽에 있는 평평한 바위 위에 서서 옷을 벗기 시작했다. 순식 간에 속옷바지 하나만 입은 채가 되었다. 물 속에 들어가는데 이 속옷을 벗지 않으면, 나중에 수레를 끄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속옷이 물에 젖으면, 그것이 살에 붙어서 살갗을 깍아내기 때문에 수레를 끌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속옷을 벗자니 둘째 딸이 쳐다보고 있을 것이 뻔한데, 자기가 아직 어리지만 그래도 여자에게 보인다니 망설여지는 마음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홀라당 벗고 말았다. 까짓 볼테면 보라지 하는 마음도 조금은 있었다.


그때에 둘째 딸은 나름대로 상념에 잠겨있다가 진원성이 옷을 벗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감탄하고 있었다. 아직 좀 어리지만 어떻게 저리 아름다운 몸매를 갖고있나 하면서, 온몸에 보기 드물게 털이 많이 나 있었지만, 나올 데는 나오고, 잘 발달된 상하체의 근육과 골격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진원성이 홀라당 벗자, 진원성의 고추를 마저 보게 되었다. 아직 어린 아이의 고추였으며, 그것이 너무나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좀 돌발적 상황이라 - 야 한번 잘 보이게 서봐라. - 라고 말하려던 참에 진원성은 이미 물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런 것을 보아도 둘째 딸이 상당히 천방지축인 것을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세상 모르고 날뛰는 성격은 호된 시련을 당해야만 고쳐지는 법이었다. 형제는 닮는다고 하지만 둘째와는 반대로 시집간 첫째 딸은 이런 천방지축은 전혀 아니었다. 


한 식경 쯤이 지나자, 진원성은 팔뚝만한 크기의 메기를 한 마리 잡아서 강변으로 던졌다. 진원성은 심양 갔다온 이래로 항상 소금과 화석(火石 부싯돌)과 작은 칼을 갖고 다녔으며, 마차에서 그것을 꺼냈다. 그리고 물가에서 흙 반죽을 만들고, 고기 배를 가르고 창자를 꺼내고, 머리를 잘랐다. 불을 피워서 결국 반 시진 쯤이 지나서야 진원성은 불에 탄 검은 흙덩어리 속 잘 구워진 메기 한 마리를 둘째 딸 앞에 내려 놓을 수가 있었다. 둘째 딸은 어떻게 먹을 줄 몰라하다가 진원성이 젓가락으로 흙을 벌리고, 살만을 발라서 앞에 놓고 젓가락을 쥐어주자 그때서야 소금 간을 찍어서 먹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