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류혼(沸流魂)

#34. 왕후지재 장약 - 2

금박(金舶) 2015. 9. 11. 11:30


  "그럼 진숙원도 앞으로 황후되기는 틀렸구만."


  사마도자가 말한 진숙원은 이미 사마창명의 두 아이를 낳은 여인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관상보감의 황후상과 많이 달랐다. 그 말을 마치면서 사마창명은 관상보감과 똑같이 생긴 장약의 얼굴을 똑바로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을 황후라고 생각하고 보니 과연 황금빛으로 보였다. 저 여자는 황후가 된다. 그럼 나는 뭐냐? 오늘부터 저 여자와 살면서 바로 황후의 남편 황제 폐하가 되는 것이다. 사마도자는 헛기침을 다시하였다.


  "어험. 루주 유대인을 불러오너라."


  사마도자의 명을 받은 낭야국 내사 왕국보가 시종을 시켜서 황학루의 주인인 유대인을 불러왔다. 왕국보가 유대인이 들어오자 앉기도 전에 물었다.


  "유대인, 우리 나으리께서 장약을 사시겠다고 하시니 값을 말하시오."


  그러자 유대인이 깜짝 놀래서 벽려혼을 바라보고 사마도자를 바라보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내사 나으리, 장약은 이미 팔렸습니다."


  유대인이 조심스럽게 말을 올렸다.


  "뭣이라고? 아니 장약이 여기 멀쩡하게 있는데 그게 무슨 소리냐? 언제 누구한테 팔려?"


  사마도자가 벌컥 화를 내면서 호통을 쳤다. 그제서 왕국보가 돌아가는 눈치를 채고 조용히 말했다.


  "오대인, 그대들이 벌써 장약을 샀다는 것이오?"


  이 점쟁이들이 장약을 사지 않았다면 이미 팔려간 장약이 여기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공천왕이 멋적게 대답하였다.


  "아, 그게 엊저녁에 어린 다비군이라는 소녀와 함께 늙은 장약을 덤으로 얹어서 샀는데 그 안에 황후지재가 섞여 있는 줄은 몰랐군요. 우리도 정말 모르고 샀는데 오늘 새벽에 새벽기도를 올리다가 신의 계시를 받고서 알았다오."


  왕국보는 왠지 점쟁이들이 미리 다 알고 선수를 쳐서 다시 비싸게 팔아먹으려는 수작이라는 의심이 들었다.


  "쯧쯧쯧. 설마 역모를 꾀하는 것은 아닐테고."


  왕국보가 눈을 내려깔고 혀를 찼다. 일개 필부가 황후지재를 노리면 결국 자기가 황제가 되겠다는 것이니 역모라고 몰아부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왕후지재를 원하는 사마도자의 마음도 그리 순수한 것은 아니었다.


  "그거야, 피차 일반인데."


  공천왕도 말싸움에서는 지지 않았다. 황제의 동생이 황제가 되려는 것도 역모나 다름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벽려혼은 처음부터 장약을 되팔려고 했던 일이었다. 그래서 말을 돌렸다.


  "하지만 나라에 국법이 있으니 국법대로 하는 수도 있지요. 그게 가장 깨끗하지요."


  벽려혼이 국법 이야기를 꺼내자 왕국보가 물었다.


  "무슨 국법?"


  "상법에서 계약을 어길 때는 몇배의 위약금을 내는 것이지요."


  모두 상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벽려혼의 말이 무슨 소리인지 몰랐으나 계산에 밝은 황학루주 유대인이 나섰다. 유대인으로서는 건강성에서 장사하고 사는 처지에 사마도자 눈밖에 날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오공자 일행의 마음을 달래서 장약을 되사

다가 사마도자에게 받쳐야 하는 것이다.


  "왕나으리, 제가 장약을 오백 냥에 오대인에게 팔았는데 제가 국법에 따라서 위약금 천냥을 오공자께 내드리고 장약을 도로 회수하지요. 그리고 왕야나으리께 제가 천냥을 받고 팔면 저는 황금 한푼도 더 버는 것이 없습니다만 왕야나으리는 황금 만냥짜리 아이를 천냥에 사는 것이니 구천냥을 버는 것입니다."


  이때 희노인이 나섰다.


  "낭야왕 나으리, 황후지재란 모름지기 만냥짜리 여자이니 깎지 말고 만냥을 다 내고 사십시오. 그래야 진짜 황후가 됩니다."


  "시끄럽다."


  왕국보가 눈을 부라렸다. 희노인은 할말이 더 있었으나 왕국보가 희노인을 쏘아부치니 더 말을 못했다.


  "내일 아침 유대인에게 황금 천냥을 가져다 주겠소. 그때 장약을 넘기시오."


  왕국보가 단호하게 결정을 내니 사마도자도 고개를 끄덕여 거기에 따랐다.


  "그럼, 내일 다시 오겠소. 그동안 장약이 흠집나지 않게 유대인이 잘 책임지시오."


  낭야국 내사 왕국보가 다시 다짐을 하고 일어서니 사마도자도 그 자리에서 일어나 황학루를 떠났다. 왕국보는 내일 아침 꽃가마에 황금 천냥을 실어와서 장약을 태우고 돌아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벽려혼은 사마도자와 왕국보등을 보내고 저녁 식사를 마치자 다시 장약과 단둘이 남았다. 황후지재라는 절세미인 장약과 아쉬운 작별의 밤이었다.


  "어제 만났는데 내일은 헤어지자니 꿈만 같구나."


  "너무 아쉬어요. 지난 이틀이 이년처럼 길었고 그만큼 정들었는데."


  장약은 신녀로서 하룻동안 품을 팔고 지쳤지만 이 밤을 그냥 보내기가 싫었다. 하지만 벽려혼은 무정하였다.


  "그래, 너도 수고가 많았다. 오늘 몹시 피곤할테니 일찍 불끄고 자자."


  장약이 일어나서 촛불은 껐으나 잠은 오지 않았다.


  "나으리, 나를 데리고 청주로 가세요."


  장약이 작은 목소리로 베개 옆에서 말을 건네었는데 벽려혼의 잠을 달아나게 하였다.


  "왜?"


  "나를 데려가시면 나으리가 장차 황제가 되지 않겠어요?"


  장약은 오늘 한나절을 벽려혼과 보내면서 그가 범인이 아닌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벽려혼과 한 평생을 하고 싶다고 말한 것이다.


  "이놈아, 황제는 아무나 되느냐?"


  벽려혼이 고개를 젓자 장약이 말했다.


  "나으리도 분명히 왕재이옵니다. 당금 효무황제의 동생인 낭야왕 사마도자 앞에서 그토록 당당한 사내는 나으리말고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나으리가 왕재라는 것을 부인하지 마십시오."


  기생도 사람 상대를 많이 하다 보니 저절로 보는 눈이 생기는 것이었다.


  "허허허"


  벽려혼이 웃어넘기려고 하자 장약이 다그쳤다.


  "그런데 왜 저를 아니 데려가려 하십니까? 왜 황제가 되려 하지 않으십니까?"


  벽려혼은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어제는 분명히 저를 동진에서 황후하도록 가만 두고 혼자 떠나라더니 오늘은 마음이 바뀌어서 저를 데리고 같이 떠나라고 한다. 여자의 마음이 갈대라서 그런 것인가? 하룻동안 그렇게 정이 깊이 들었나? 제황이 되고 싶으면 저를 데리고 떠나라고 버들가지같은 장약이 섬섬옥수로 유혹한다.벽려혼은 고개를 저었다.


  "내게는 이미 세 부인이 있는데 그대가 황후가 된다면 세 부인은 모두 죽어야 되지 않는가? 나는 내가 제황이 안되더라도 좋으니 세 부인과 오손도손 살고 싶다."


  장약이 그 말을 듣고서 한숨을 쉬었다.


  "세 부인을 다 사랑하십니까?"


  "그렇다."


  장약은 창밖으로 밤하늘을 보면 원한이 섞인 저주를 하였다.


  "절대로 세 부인과 한꺼번에 화목하게 지내지 못합니다. 단지 한 부인하고만 가까이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벽려혼은 눈을 감고 대답했다. 하지만 거기서 장약의 강변이 끝나지 않았다.


  "그럴 바엔 저를 택하십시오. 그래서 저와 함께 천하를 나누어 가져요. 그게 사내대장부의 길입니다. 사사로운 정 보다는 일국의 황제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후손들을 모두 왕으로 봉하여 대대손손 부귀하게 살게 할 수도 있지요."


  벽려혼은 눈을 감은 채로 잠시 유혹에 빠졌다.


  "그걸 몰랐구나."


  "."


  "그걸 몰랐구나."


  벽려혼도 황제가 되는 것을 마다할 입장이 아니었다. 요즘 중원에서는 뭐 달린 것들은 개나 소나 왕이라고 하는데.


  "황제가 되기 위해서 아깝지만 세 부인을 버린다 이 말이렸다."


  "바로 그렇습니다. 만승천자 제황이 되기 위해서."


  벽려혼의 감은 눈 앞에 사비공주의 얼굴이 스쳐갔다. 부림의 얼굴도 스쳐갔다. 모용용의 얼굴도 떠올랐다.


  "아냐, 아냐. 난 그럴수는 없어."


  벽려혼이 쩔레쩔레 고개를 흔들었다. 장약이 답답한 마음으로 물었다.


  "왜 못하십니까?"


  "하지만, 하지만 나는 좀 모자라는 놈이다. 결코 전하지재가 아니란 말이다. 설령 전하지재라고 해도 제 조강지처며 부인들을 모두 쫓아내서 그 여자들의 가슴에 한을 품게 하고 제위에 오르는 그런 무정한 제황은 내가 평생 하기 싫다."


  장약이 안타까워하면서 다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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